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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땡땡이치던 제자 스승을 넘어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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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용수(왼), 김호곤

K-리그 1위 FC 서울과 3위 울산 현대의 올해 세 번째 맞대결이 열린 26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최용수(39) 서울 감독과 김호곤(61) 울산 감독이 경기 전 라커룸 앞에서 정답게 포옹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안기듯 최 감독이 자세를 낮춰 김 감독 품에 안겼다.

 “쌤, 오늘 말끔하게 차려입으셨습니다.” “어, 우리 용수 왔구나.” 세월이 지났지만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치열한 순위 경쟁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둘은 동래고와 연세대 선·후배 사이다. 김 감독이 연세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1992년, 3학년 최용수는 대학 무대에서도 선발 출전이 쉽지 않은 무명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이 혹독하게 조련하는 동시에 꾸준히 출전 기회를 주며 키워 나갔다.

최 감독은 “대학 시절 훈련이 너무 힘들어 몰래 숙소에서 도망쳤다가 감독님께 잡혀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프로에 와서도 둘의 인연은 각별했다. 김 감독은 지난 6월 FA컵 성남 원정을 앞두고 상경했다가 서울 본가로 최 감독을 초대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지도자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해 조언해 줬다.

최 감독은 “주변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이 내겐 큰 복이 아닐 수 없다”며 고마워했다.

 제자가 어엿한 프로팀 감독으로 성장한 모습에 스승은 흐뭇하기만 하다. 김 감독은 “이렇게 지도자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고 말했다. 26일 경기를 앞두고도 제자와 통화한 김 감독은 “요샌 용수가 엄살이 많이 늘었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그게 다 스승님께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맞받아쳤다.

  지난해 감독대행을 맡은 최 감독은 대행 꼬리표를 뗀 올해 스승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울산과의 두 경기 모두 앞서가다 동점을 허용해 비기고 말았다. 결국 삼세판 만에 스승을 넘어섰다. 서울은 후반 45분 데얀의 결승골로 울산을 2-1로 물리쳤다. 평소 그라운드로 뛰어나갈 정도로 격렬한 골 세리머니를 하는 최 감독은 이날만큼은 스승께 미안했던지 행동을 자제했다.

 정식 감독이 된 후 처음 스승을 이긴 소감을 묻자 최 감독은 “승부의 세계는 어쩔 수 없다.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꼭 이기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내가 팀을 이렇게 성장시킨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7일 경기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서동현과 배일환의 연속골을 앞세워 포항 스틸러스를 2-1로 꺾고 지난 7월 25일 경남전 이후 정규리그 11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다.

울산=오명철 기자

◆프로축구 전적(27일)

▶A그룹 포항 1-2 제주
▶B그룹 광주 0-1 강원 전남 0-1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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