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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논설실장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 후보로 나섰다. 역대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은 모두 실패했다. 책임 없이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안 후보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길 미루는 것도 그런 교훈 때문인지 모르겠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어봐도 그의 생각, 새로운 비전이나 구상을 발견할 수 없다. 현실에 대한 원론적인 ‘평가’뿐이다. 안 후보가 말하는 ‘새 정치’는 지극히 상식적이다. 과거 정치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 후보가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것은 기존 정치권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태 정치의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안 후보도 출마선언문에서 “국민은 저를 통해 정치 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주셨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기존 정당을 매우 불신한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지난해 봄 안 교수에게 정치 자문할 당시 “국회에 가서 정치부터 배우라”고 권하자 안 후보는 “국회의원과 국회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정치 경험이 없는 것에 대해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적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험이 적은, 혹은 없는 사람이 나설 때 흔히 내거는 명분이다. 이명박(MB) 대통령도 후보 시절 비슷한 입장이었다. MB는 ‘탈(脫)여의도 정치’의 상징이었다.

 5·16 쿠데타 직후 군인들도 부패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나섰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로 시작하는 혁명공약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바람에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박수를 쳤다. 구(舊)정치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가 어떤 모습일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낡은 정치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운 안 후보는 가장 과감하게 판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국정 운영에서 정당의 역할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는 정당정치를 믿는 사람입니다.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정당은 필요하지만 기존 정당엔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정당을 고치거나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게 순서다. 하지만 그는 무소속, ‘무(無)정당’으로 출마했다.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건지, 다른 당에 들어가겠다는 건지, 아니면 무정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아리송하다. 민주당을 향해 변화를 요구하지만 어떤 변화를 말하는지, 어느 정도 바뀌어야 입당하겠다는 건지 입을 다물고 있다. 기존 정치에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꽃가마’ 태워주기를 바란다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의회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경험한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여소(與小)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소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MB는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을 거느리고도 친박계를 끌어안지 못해 주요 고비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차기 대통령은 현 19대 국회와 임기를 같이해야 한다. 현 국회는 새누리당이 다수다. 안 후보가 당선될 경우 여소야대 국회다. 선거가 끝난 뒤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건 명분도 없고, 정치를 극단적 대결국면으로 몰아갈 수 있다. 안 후보가 비난해온 구태 정치의 전형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해서 다수당을 꾸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새 정당을 만드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이다. 당선 가능성만 생각한다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흥행을 하다 마지막에 민주당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책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민주당과 안 후보의 정책 차이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자신의 정책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업혀 가거나, 민주당이 자신의 공약을 당론으로 채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안 후보가 민주당에 얼굴만 빌려주거나, 민주당이 안철수 집권의 들러리를 서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다면 심각한 당·청 갈등이 불가피하다.

 정당정치는 후보만이 아니라 정당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약을 만드는 과정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정책이야 어찌 되건 권력만 나눈다면 야합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단일화할 생각이라면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무소속은 정당정치의 원칙에도, 현실에도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