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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됐다가 잡초처럼 일어선 챔피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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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01년 ‘새’로 데뷔했을 당시의 싸이. 주류 대중음악을 뒤집는 역발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중앙포토]

‘소리 지르는 네가/음악에 미치는 네가/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싸이(35·본명 박재상)가 2002년 발표한 ‘챔피언’의 가사다. ‘즐길 줄 아는 이가 챔피언’이라던 그의 외침은 10년 뒤 현실이 됐다. ‘강남 스타일’로 빌보드 등 전세계 팝차트 순위를 석권하며 대중음악계의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란 ‘강남 스타일’ 가사처럼 그는 뛰는 K팝의 열기를 넘어 세계를 훨훨 날았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컨셉트로 지구촌을 홀렸다. 그가 ‘뭘 좀 아는 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강남 스타일’에서 싸이를 매혹시킨 ‘반전 있는 여자’처럼 싸이의 음악인생은 한마디로 ‘반전 있는 삶’이었다.

 2001년 데뷔곡 ‘새’를 발표한 싸이의 데뷔 무대는 충격적이었다.

‘나 완전히 새됐어’라며 날개짓 하는 춤으로 ‘엽기가수’가 됐다. 육중한 몸에 지극히 한국적인 얼굴, ‘싸이코’에서 따온 예명 등 기존 가수들과 차원이 다른, ‘똘끼’ 충만한 가수가 등장했다. 젊은 층은 열광했고 그는 깜짝 스타가 됐다.

 ‘새’처럼 부상하던 그의 날개는 그 해 말 터진 대마초 사건으로 꺾였다. 그는 “갑작스런 인기와 2집 앨범에 대한 부담 때문에 대마초에 손을 댔다”며 용서를 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싸이가 제기한 건 2002년 3집 앨범의 ‘챔피언’이 히트하면서다. 그는 경쾌한 멜로디와 가사로 각종 공연과 행사를 휩쓸었다. ‘이벤트형 가수’로 거듭난 싸이는 콘서트에서 인기 여가수들을 패러디하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았다. 대중은 ‘역시 싸이’라며 그의 부활을 반겼다.

 3집 ‘낙원’, 4집 ‘연예인’으로 히트 행진을 이어가던 그에게 2007년 ‘병역 비리’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산업기능요원으로 2005년 군 복무를 마쳤지만 부실 근무 의혹이 제기됐고, ‘재입대’ 판결을 받았다. 아내와 갓 태어난 쌍둥이 딸을 두고 2007년 말 현역으로 재입대했다. 남자들의 악몽인 ‘군대 두 번 가는 일’을 실제로 경험했다.

 쿨한 사과에 이은 재입대. 그는 위축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2010년 5집으로 컴백한 뒤 무대에 설 때마다 “6년 만에 제대한 남자, 싸이”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아픈 과거조차 위트의 소재로 삼았다. “재입대할 때만 해도 남 탓하기 바빴는데 이젠 다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노래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 대중은 닫혀있던 마음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굴곡진 가수 인생을 5집 앨범의 ‘싸군’에 직설적 가사로 쏟아냈다.

 ‘맞아도 싸군/죽어도 싸군/새 됐으 외치다 엽기가수 용 됐으/챔피언 외치다가 국민가수 다 됐으/자숙과 자습을 거쳐/예비군 통지서와 입영 통지서를 같은 날 받아본 놈 있냐/마지막으로 해보자 어떻게 되나 보자/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보자.’

 직설화법으로 표현한 반성과 각오, 대중의 마음을 향한 싸이식 정면돌파였다. 5집 앨범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졌던 그는 양현석 프로듀서와 손잡고, ‘강남스타일’을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인생 최대의 반전을 맞았다.

 ‘욘사마처럼 환한 미소가 있나/비처럼 뻑가는 몸과 춤이 있나/허나 딱하나/좌우간 공연과 음악 힘나게 신나게’(‘싸군’의 가사)

 엽기가수로 출발, 두 번의 추락을 자산 삼아 ‘국제가수’가 된 싸이. 그는 2006년 발표한 ‘위아더 원’에서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다. ‘실패해 본 자만이 역전의 맛을 아니/짓밟힐수록 또 다시 일어나 잡초같이/승자는 결국 질긴 놈/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나는 미친 놈/넘어질 순 있어도 쓰러질 수는 없어/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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