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도북'을 종주했다고 하면 전문산악인들도 남다른 시선을 보낸다. 불수도북은 서울 북쪽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불암산(508m), 수락산(637.7m), 도봉산(740m), 북한산(836.5m)을 일컫는 말이다. 불수도북의 능선 총길이는 약 45km. '산꾼'들은 잠도 자지 않고 20시간 내외에 걸쳐 종주하면서 걸린 시간으로 등급을 매기기도 한다. 최근 전문 산꾼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불수도북 종주에 주말 산꾼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백두대간처럼 구간을 나눠 주 1회 또는 월 1회 한 구간씩 종주에 나서는 것.
불수도북 구간 종주는 불암산-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세 구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흘에 걸쳐 불수도북을 종주해 봤다. 글.사진=김순근(여행작가.배재대 관광이벤트 연구소 전문위원)
*** 불암산- 수락산
불암산은 불수도북의 막내답게 가장 쉽고 짧은 코스다. 마침 인터넷 다음 카페의 '토요 북한산' 회원들이 21일 불수도북 종주에 앞서 사전답사 산행을 한다고 해 동행했다. 종주 참가자들이 배낭없이 산행할 수 있도록 14명의 선발대가 불암산과 수락산을 거쳐 도봉산 우이암으로 하산하며, 주요 포인트에 식수와 식량을 비축해 둘 계획이란다. 오전 8시30분, 불암산 주능선이 시작되는 무수골을 출발했다. 온통 바위로 이뤄진 정상부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흙길 등산로다. 그러나 정상 부위 암릉은 밧줄.쇠줄.초보자급 리지(암벽타기) 등이 이어지는 등 바위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상에서 수락산 경계까지는 한적한 오솔길. 출발한 지 1시간45분 만에 덕능고개에 도착했다.
수락산 경계에서 군부대 철책을 따라 20여 분 올라가자 왼쪽으로 능선 등산로가 나온다. 도솔봉(540m)까지 1시간 여 산행 동안 수락산의 상징인 기암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도솔봉을 넘어서자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이 기암들로 둘러싸여 장관이다. 주능선을 따라 기암과 암봉들이 신록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낸다. 바위 성채처럼 웅장한 바위로 이뤄진 정상에서 전망을 감상한 뒤 동막골로 하산길을 잡았다.
하산길에선 기차바위(홈통바위)가 마지막 재미를 선사한다. 길이 30여m의 가파른 바위 경사면에 두 개의 밧줄이 내려져 있는데, 위에서 바라보면 아찔하다. 등산객들은 마치 기차놀이 하듯 일렬로 줄지어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란다. 오후 1시50분, 불암산을 출발한 지 5시간20분 만에 '불수' 종주를 끝냈다(초보 산행객은 약 7시간 소요).
▶ 불암산 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상계역에서 큰길로 나와 국민은행 앞에서 1142번을 타고 중계동 무수골 정자나무 앞에서 하차(상계역서 택시로 10여 분 거리). 정자나무 왼쪽 길에서 꿈에그린 아파트 209동 쪽으로 올라가 천수주말농장 우측 철조망을 따라 30여m 가면 등산로가 나온다.
*** 도봉산
도봉산 종주는 회룡역~포대능선~자운봉~도봉주능선~우이동 매표소가 정코스다. 지난 20여 년 동안 도봉산을 400여 차례 올랐고, 불수도북 종주 경력자인 정택준(43)씨가 산행에 동행했다. 정씨는 "도봉산은 불수도북 중에서 암릉미가 가장 빼어난 산으로, 포대능선이 최고"라며 "위험표시가 있는 암릉 구간은 대부분 중급 리지 코스이기 때문에 초보자는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격적인 산행은 회룡사에서 시작된다. 40여 분 계속 올라 능선길에 접어들자 웅장한 기암괴석 너머로 의정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자 송림과 어우러진 기암들의 자태가 심상찮다. 도공이 신기로 빗어낸 듯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가 천상의 조각공원을 연상시킨다. 포대능선이다.
포대능선에서 도봉주능선을 거쳐 우이암까지는 아기자기한 암릉이 이어져 바위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급경사 바위 협곡인 Y계곡 구간. 쇠말뚝과 쇠줄에 의지해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Y계곡을 지나자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과 옆의 신선대가 당간지주처럼 나란히 하늘로 치솟아 장관이다. 자운봉 옆 신선대 정상에 서면 지나 온 암릉구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자운봉 아래 만장굴과 선인봉이 웅장미를 겨룬다.
신선대를 지나 도봉주능선의 뜀바위를 우회하니 '연간 3명 사망, 32명 부상'이란 팻말이 걸린 칼바위가 막아선다. 동행한 정택준씨는 "뜀바위.칼바위 등 이름을 가진 소위 '메이커 바위'에선 그동안 수십 명의 산행객이 목숨을 잃었다"며 "바위 앞에선 항상 겸손해야 하며, 아니다 싶으면 반드시 비켜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섯 개의 바위가 올망졸망 서 있는 오봉능선을 바라보며 도봉주능선을 빠져나온 뒤 우이암 매표소로 하산길을 잡았다. 오후 3시 우이동 유원지 도착, 총산행 시간 5시간(초보는 6~7시간 소요).
▶ 도봉산 가는길 : 국철 1호선 회룡역 2번 출구~왼쪽 신일유토빌 아파트길~정문~왼쪽 신일부동산 삼거리 우측길~도봉산.
*** 북한산
북한산 산행은 도선사 입구에서 시작된다. 백운대 매표소가 있는 도선사까지 40여 분을 걸어가기가 고민스럽다. 도선사행 셔틀버스가 있고, 택시도 운행하지만 불수도북 종주는 연결 지점을 포함해 모두 걷는 것이 원칙이어서 쉬엄쉬엄 걸어갔다.
매표소에서 백운대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잠시 평지가 이어지는 하루재를 넘어서자 웅장한 인수봉이 위압적으로 다가선다. 백운산장에서 식수를 채우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을 넘어서자 성곽 끝으로 백운대 암릉길이 떠오른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이 까마득하고, 암릉길을 아슬아슬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을 졸이게 한다. 암릉길 옆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천길 낭떠러지. "쇠줄을 놓치면 최하가 사망"이라는 앞사람의 말이 실감있게 들린다.
백운대 정상에 서니 사방시야가 탁 트이고 지나온 도봉산과 북수도북의 끝지점인 비봉능선까지 한눈에 잡힌다. 백운대를 내려오면 평범한 등산로다. 용암문에서 동수대~대동문~대남문까지는 산성 등산로가 길게 이어진다. 이 구간은 성곽 너머로 서울 시내가 펼쳐진다. 비봉능선은 북한산에서 기암과 바위봉우리가 가장 잘 어우러진 구간 중 하나다. 비봉 쪽보다 문수봉 쪽에서 보는 전망이 한 수 위다. 비봉매표소 하산행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상의 북한산 능선 종주는 비봉에서 향로봉을 거쳐 불광동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대남문을 지날 즈음부터 지칠 대로 지친 종주자들이 그냥 하산하면서 불수도북의 끝지점이 비봉매표소의 구기동으로 굳어졌다.
결국 대세에 따르기로 하고, 비봉매표소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드디어 불수도북 구간 종주 끝. 박수 치는 사람 하나 없지만, 그 뿌듯함이란! 불수도북을 종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총산행 시간 4시간30분(초보는 6~7시간 소요).
▶ 북한산 가는길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09, 1217, 12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