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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마우스 ...'칸막이방 전사'가 국가운명 좌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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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25면

2005년 39대단한 도전39대회에 출전한 로봇 자동차. [위키피디아]

싸움터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감정이 없는 무자비한 로봇 병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 자동화 또는 전쟁 무인화가 실현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전투 자동화의 목표는 전투의 네 국면, 곧 적의 병력 위치 확인, 아군이 취하게 될 군사행동 결정, 적합한 병기의 발사, 적군에게 준 손해의 평가를 모두 자동화하는 데 있다.
전투가 자동화 또는 무인화되면 병사보다 무인 병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무인 병기로는 무인항공기(UAV·unmanned aerial vehicle)와 무인 지상차량(UGV·unmanned ground vehicle)을 꼽을 수 있다.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있다' ⑤군사용 로봇

전투 자동화 양대 축, 무인 항공기·지상차량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으로 원격 조종되는 무인항공기는 ‘장난감 비행기 같다’는 뜻의 드론(drone)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전에 배치되어 위력을 떨친 미국의 드론은 중거리 중저 고도용인 프레데터(Predator)와 장거리 고도용인 글로벌호크(Global Hawk)이다. 2001년 10월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알카에다를 응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때 프레데터에 미사일을 장착하여 탈레반군을 폭격했다. 그동안 무인항공기는 정찰 감시용으로 활용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무인 공격기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차세대 프레데터로 2007년 5월 ‘저승사자’를 뜻하는 리퍼(Reaper)를 실전 배치하고 2009년 4월 어벤저(Avenger)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미국 최대의 드론인 어벤저는 프레데터보다 세 배, 리퍼보다 두 배 정도 빠르며 스텔스 기능도 갖고 있다.

한편 미국 국방부(펜타곤)는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무인항공기와 달리 사람처럼 행동하는 무인 지상차량 또는 로봇 자동차를 개발한다. 펜타곤은 로봇 자동차의 개발을 지원하고 독려하기 위해 자동차 경주 대회를 세 차례 개최했다. 대회 명칭은 ‘다르파 대단한 도전(DARPA Grand Challenge)’이다. 미국 최고의 국방과학 기획부서인 다르파(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전쟁에 필요한 첨단기술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며, 이렇게 개발된 원천기술은 대부분 기업으로 넘겨져 상용화되므로 결국 미국 제품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대회의 출전 자격은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장애물을 피해갈 줄 아는 무인 차량에만 주어졌다.

2004년 3월 13일 첫 번째 대회에는 모양과 성능이 제각각인 25종의 자동차가 참가했다. 이들은 우승 상금 100만 달러를 거머쥐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에 이르는 483㎞의 모하비 사막을 10시간 안에 완주해야 했다. 상세한 코스는 대회 시작 두 시간 전에야 공개되었다. 결승선을 통과하기는커녕 코스의 5% 이상을 내달린 차량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2005년 10월 8일 펜타곤은 ‘대단한 도전’ 대회를 다시 개최했다. 모하비 사막에서 212㎞를 10시간 안에 횡단하는 경주였다. 우승 상금은 200만 달러로 올랐다. 23대가 출전했는데 무려 5대가 결승선에 도착했다. 우승은 평균 시속 30.7㎞로 6시간54분 만에 완주한 스탠리(Stanley)에 돌아갔다. 스탠퍼드대에서 만든 스탠리는 폴크스바겐을 개조한 것으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 레이저 거리 측정장치, 레이더, 스테레오 카메라, 각종 센서와 함께 랩톱 컴퓨터 7대가 장착되었다.

2007년 11월 3일 펜타곤은 한 단계 수준을 높인 로봇 자동차 경주 대회를 열었다. 대회 명칭은 ‘다르파 도시 도전(DARPA Urban Challenge)’이다. 이 대회는 명칭 그대로 무대를 사막에서 대도시로 옮겨 실시되었다. 무인 자동차는 도시를 흉내 내서 만든 96㎞ 구간을 6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 실제 도로처럼 코스에는 건물과 가로수 등 장애물이 나타나는데, 다른 차량들과 뒤섞여 교통신호에 따라 주행하면서 제한속도를 지키는 등 교통법규도 준수하고 잠깐 동안 주차장에도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거리에서 차를 운전할 때와 거의 똑같은 조건에서 우승하는 무인 자동차가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25일 다르파가 선정한 차량 35대가 대회 장소에 집결했다. 이들은 10월 26일부터 31일까지 일종의 예선전을 치렀다. 상금도 3등까지 수여되므로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우승자는 200만 달러, 2등은 100만 달러, 3등은 50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 11월 3일 자동차 6대가 완주에 성공하여 미국 의회가 2015년까지 지상 전투 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하도록 법률로 규정한 사항을 이행할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이 확보된 것으로 여겨졌다.

로봇 자동차 대회는 사람이 운전하는 즐거움을 자동차에 양보해야 하는 세상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 셈이다. 2030년께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거리를 누비는 승용차가 나타나게 되면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을 터이므로 차 안에서 얼마든지 다른 일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가령 인터넷을 검색하며 업무를 처리하거나 창 밖 풍경을 눈요기하며 피로를 풀 수도 있을 것이다.

무인 지상차량은 병사 대신 정찰, 경계, 폭발물 탐지 및 제거 임무뿐 아니라 사격도 하는 로봇 병기이다. 2005년 이라크에 실전 배치된 탤런(Talon)은 자동소총과 로켓탄 발사 장치가 장착되었으며 사람에 의해 원격 조종되는 로봇 탱크이다. 동물처럼 네 발로 걷는 로봇인 빅덕(BigDog)은 노새처럼 보병의 장비를 등에 지고 산비탈을 오르내린다. 다르파가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이트르(EATR) 로봇은 미끄러지듯 움직이면서 이파리를 긁어 모아 불로 태워서 전류를 발생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지상로봇 구매액 세계 6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 전문가인 피터 싱어에 따르면 미군은 2001년까지만 해도 지상로봇에 대한 수요가 전혀 없다가 2006년 로봇이 3만 회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 정도가 되었다. 2009년 1월 펴낸 로봇과 전쟁(Wired for War)에서 싱어는 미국이 무인 지상차량을 1만 2000대 보유하고 있으며 조만간 수만 대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6월 2일자의 기술 특집에서 올해 미국은 지상로봇에 6억8900만 달러를 투입하여 세계에서 로봇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라고 보도했다. 미국을 선두로 이스라엘·영국·독일·중국·한국·싱가포르·호주·프랑스·캐나다의 순서로 지상로봇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가 지상로봇 구매에 돈을 많이 투입하는 세계 10대 국가 중에서 6위로 자리매김한 것은 휴전 상태인 분단국가로서 어쩔 수 없는 결과인 듯하다.

싱어는 군사용 로봇의 발전 방향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전투 로봇의 모양과 크기가 다양해진다. 바퀴로 굴러가는 것부터 빅덕처럼 다리가 달린 것까지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전쟁터를 누비게 된다. 7.5㎝에 불과한 벌새 로봇부터 축구장 길이의 레이더가 설치된 비행선까지 다양한 크기의 로봇이 하늘에서 활약한다.
둘째, 전쟁터에서 로봇의 역할이 더욱 확대된다. 최전방 철책선 경계를 서거나 지뢰 탐지 및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전투 상황에 투입된다. 2007년 선보인 마스(MAARS)는 160㎏짜리 기관총이 달려 있으며 수류탄 발사가 가능한 로봇 탱크이다. 전투 중 부상당한 병사를 안전한 장소로 끌어내 돌볼 줄 아는 간호 로봇도 활약이 기대된다.

셋째, 전투 로봇의 지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프레데터의 경우 원격조종 항공기로 개발되었지만 컴퓨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스스로 이착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목표물 12개를 동시에 추적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목표물이 지나온 출발점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데터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리퍼 역시 사람의 발자국이나 제초기가 지나간 흔적까지 추적하여 분석할 수 있다. 전투 로봇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을 갖게 될 날이 코앞에 닥쳐온 것이다.
2008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펴낸 2025년 세계적 추세(Global Trends 2025)에 따르면 2014년 무인 지상차량, 곧 로봇 병사가 전투 상황에서 사람에게 사격을 가하고, 2025년 완전 자율 로봇이 마침내 전쟁터를 누비게 된다. 이 보고서는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일독해야 할 문서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오작동으로 전투 발발 가능성
싱어는 로봇과 전쟁에서 사람끼리만 전쟁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살인 로봇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전쟁에 대해 “전 지구적 기후변화와 다를 바 없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사례로 전투 장소가 들판에서 실내 공간으로 바뀌는 상황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전쟁에 나간다’는 말이 어느 먼 곳의 참호 속에 숨는 것을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대신 전쟁은 “날마다 자가용으로 출근해서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마우스로 클릭하는 일”이 되었다. 총 대신 마우스로 전투를 하는 이른바 칸막이방 전사(cubicle warrior)들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이 다가오는 셈이다. 비디오게임을 열심히 하면 훗날 무인병기 조종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는 것 같다.

전투 자동화 또는 전쟁 무인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무인 병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자동화된 병기에 대한 사람의 통제가 불가능해질수록 그만큼 작전사령관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의 지시로 전투가 발발할 개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컴퓨터의 고장이나 잘못된 동작으로 위기를 초래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1년 걸프전쟁에서 미국 미사일인 패트리엇을 통제하는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미군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한 적도 있다.
어쨌거나 로봇 무기가 전쟁의 주역이 되면 무공훈장은 야전군인보다는 칸막이방 병사, 나아가서는 살인 로봇의 몫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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