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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혁명 후기처럼 위기 꼭짓점에 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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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04면

보살(菩薩)의 인자함과 루쉰(魯迅)의 단호함. 중국 베이징대학의 ‘정신적 스승(精神導師)’으로 불리는 첸리췬(錢理群·73·사진) 선생의 첫인상이 그랬다. 배불뚝이 미륵보살을 연상시키는 따사한 웃음, 그러나 사자후처럼 토해내는 중국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그가 한평생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온 루쉰을 닮아 있었다. “현재 중국 사회는 위기의 꼭짓점에 와 있다. 더 이상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게 마치 문화대혁명의 후기와 비슷하다.” 그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중국 교육제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으로 베이징대학의 강단을 떠나야 했던 10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제1회 ‘파주 북 어워드’의 저작상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18일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안에 있는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서재에서 만났다.

제1회 '파주 북 어워드' 저작상 받은 베이징대 정신적 스승, 첸리췬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이유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을 본 듯싶다.(웃음) 모두들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중국의 역사와 현실을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쓴 책들이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수십 권의 저서 중 한국엔 내 정신의 자서전망각을 거부하라모택동(毛澤東)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등 세 권이 번역돼 출판됐다. 망각을 거부하라는 반우파(反右派) 투쟁을 기록한 것이다. 반우파 투쟁이 중국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는 무언가. (※반우파 투쟁은 1957년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유도한 뒤 비판자들에게 우파라는 딱지를 붙여 탄압한 사건을 말한다.)
“반우파 투쟁은 중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두 가지 점에서다. 하나는 현재 중국 체제의 골격이 반우파 투쟁 이후 갖춰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57년부터 중국 민간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 둥슈위(董秀玉)중국문화논단 이사장, 첸리췬 선생,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그러나 이 책은 중국 대륙에선 출간되지 못하고 홍콩에서 출판됐다.
“내 책 중 여러 권이 중국 내에서 출판 허가를 받지 못했다. 또 허가를 받더라도 많은 내용이 삭제됐다. 내 정신의 자서전 같은 경우엔 대략 6만 자가 지워졌다. 이 책의 한국어판에선 중국에서 삭제했던 내용을 굵은 활자로 표시해 실었다. 한국 독자들로서는 어떤 내용이 삭제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를 다룬 책들이 출판 허가를 받지 못하나.
“중국 출판계에서 ‘금지구역(禁區)’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금지구역은 역사적으로 네 가지가 있다. 57년의 반우파 투쟁,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걸친 대기근, 문화대혁명, 그리고 89년의 6·4 천안문(天安門) 운동이다.”

-언제쯤 이런 문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할 게 있다. 인터넷의 출현이다. 관방에선 인터넷을 통제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출판 허용을 받지 못한 내 저작과 문장이 인터넷에 돌아 다닌다. 중국 출판계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다. 중국에서 언론자유 공간이 확대되려면 우선 공산당의 통제를 받지 않은 사영(私營) 출판사가 출현해야 한다.”

-중국 현대사를 말할 때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문혁이 중국에 끼친 가장 큰 충격은 무언가.
“문혁의 충격은 정치·사회·경제 등 전방위적인 것이다. 또 몇 세대에 걸친 것이다. 이 중 가장 큰 건 사람들의 사상에 미친 충격이다. 흔히 중국의 문화를 유가 문화, 도가 문화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문혁으로 인해 중국에 ‘마오쩌둥 문화’가 생겨났다. 마오 문화는 관념과 사상이자 사유방식, 행위방식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마오쩌둥 문화인가.
“마오쩌둥은 중국 최대의 이상주의자이자 독재자다. 그의 사상은 이상적인 점과 전제적인 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흔히 이원적 대립으로 불린다. 즉 적이 아니면 친구이고, 정확하지 않으면 착오이며, 진리가 아니면 오류라는 식이다. 이 같은 이원적 대립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은 ‘투쟁’이다. 호전적이 되는 이유다. 자신을 진리의 수호자라 생각하기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적이 된다. 이런 모습을 현대의 중국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마오를 비판하는 이들에게도 마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문혁의 상처가 있었기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 가능했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 사회의 위기가 더 깊어져야 중국이 비로소 경제개혁에 이은 정치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 사회의 위기는 이미 꼭짓점에 와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모순이 깊어져야 한단 말인가. 현재 상황은 마치 문혁 후기와 비슷하다. 문혁 후기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당시엔 더 이상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모두들 문혁이 막다른 골목에 처해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마오쩌둥의 통제가 비록 엄격하긴 했지만 민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고했다는 점이다. 각자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했다. 현재의 중국은 이런 국면에 와 있다. 모두들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아직도 마오쩌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마오 사후 30여 년을 ‘개혁·개방의 시대’라 부르기보다는 ‘포스트 마오 시대’라 말한다. 덩샤오핑의 개혁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마오 시대의 계급투쟁 구호가 덩 시대엔 경제건설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체제상의 변화는 없다. 과거 중국에는 ‘중국 학문을 근본으로 하고, 서양 학문으로 보충한다(中學爲體 西學爲用)’는 말이 있었다. 현재의 중국은 아직도 마오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현재 중국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무언가.
“나라가 양극으로 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부패가 도덕의 위기와 인심(人心)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중국 사회의 위아래 모두 불안감을 갖고 있다. 환자는 의사를 믿지 못하고, 학생은 선생을 믿지 못한다.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90년대 이후로는 체제 내로 편입돼 중국에선 더 이상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마오쩌둥 시기엔 한마디로 지식인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미사일 만드는 이가 달걀 파는 이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만큼 지식인들은 빈곤에 시달렸다. 그러나 89년 천안문 운동 이후에는 정부가 지식인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지식경제 계층을 형성하며 상류층에 진입해 권력계층과 한데 묶여지게 됐다. 이들 중 일부가 정부를 변호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지식인이란 것은 자신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대부분의 지식인은 권력계층에 반항하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복종하는 것도 아니다.”

-한평생 루쉰을 공부했는데, 루쉰의 가르침은 현대 중국에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
“이는 중국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다. 중국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룰 때 어디서 정신적 자원을 얻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서양에서 찾을 수도, 또 전통에서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20세기 중국 경험’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20세기에 중국은 크게 세 가지 중요한 자원을 갖는 경험을 했다. 쑨원(孫文) 자원, 마오쩌둥 자원, 그리고 루쉰 자원이다. 루쉰의 사상은 시대를 초월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겠다. 루쉰은 ‘한때 잘나갔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꾀하고, 지금 잘나가는 이는 현상유지를 원하며, 잘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개혁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재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다. 중국인 모두 지금 개혁을 외친다. 과거 잘 살았던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마오쩌둥 주석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현재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말하는 개혁은 기득권을 더 확장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교육개혁이 왜 실패하는지 아는가. 기득권층이 개혁 주도 세력이 되는 바람에 그들의 이익을 확대하는 쪽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가 외치는 개혁이 진정한 개혁이다.”

-사회적 약자가 말하는 개혁은 무언가.
“현재 중국엔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나오는 세 가지 목소리가 있다. 첫째는 노동자·농민을 주축으로 한 권리 보호 운동이다. 주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자는 것이다. 둘째는 청년들 위주의 인터넷 운동이다. 셋째는 NGO(비정부기구) 운동이다. 청년들과 NGO는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들이 진정한 개혁 세력이다. 한데 문제는 당국이 이들을 사회불안 세력으로 보고, 심지어 외국의 적대 세력과 연계돼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개혁의 동력이 돼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개혁의 저해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문제를 둘러싸고 반일 시위가 한창이다. 관제 시위라는 말도 있다. 또 중국이 굴기하며 중화주의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다.
“댜오위다오는 역사적으로 중국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로 인해 중국의 민족주의가 비(非)이성적인 국가주의로 발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시위를 조종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우리 젊은 사람들은 싸웠으면 한다’고 말하더라. 외부에선 ‘중국의 굴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서 볼 때 중국의 굴기를 느낄 수 없다. 중국은 아직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중화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이웃 나라들과의 평화공존이다.”


첸리췬 1939년 1월 충칭(重慶) 출생. 56년 베이징대학 중문학과(신문 전공)에 입학했으나 58년 학과를 통합하는 교육개혁으로 졸업은 인민대학에서 했다. 루쉰 연구의 1인자로 문화대혁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해 온 지식인 중 한 명이다. 비판정신으로 가득한 그의 베이징대학 강의엔 한 번에 수백 명의 학생이 몰려들어 늘 성황을 이뤘다. 98년 베이징대학 개교 100주년에 즈음해 실시된 ‘10대 우수 교수’ 선발 학생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이후 베이징대학의 ‘정신적 스승’으로 불리고 있다. 학생들에게 ‘독립, 자유, 비판, 창조’의 8자를 베이징대학의 전통으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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