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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싸이 같은 별난 놈도 뛰어놀 ‘판’을 만들어줘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9호 25면

한때나마 영화 매니어의 인생을 살았다면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발음하기도 힘든 유럽이나 이란 혹은 일본 영화들을 필견 리스트에 올려놓고 이해할 듯 말 듯한 작품들 앞에서 왠지 감동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 곳곳의 영화팬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그런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며 찾아볼 것이다.
뜻도 모르고 주워섬기던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된 세계적인 히트곡들 역시 마찬가지. 싸이의 노래가 콘돔 스타일인지 캉남 스타일인지도 모르면서 신나게 말춤을 추어대는 미국인들을 보면 왠지 뿌듯해진다. 문화예술 작품으로 순위를 매기는 건 말도 안 되며 미국 진출에 자랑스러워하는 건 문화패권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쿨한 냉소를 날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것이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면 흐뭇하고 통쾌해지는 것이 속물스럽다 해도 솔직한 마음인걸. 사실 그동안 그들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컬처#: 글로벌 히트상품 만들기

그들의 성공 이유를 묻는 질문들에는 쉽게 해답을 콕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문화상품이나 예술작품의 성공은 그 작품 속에서만 해답을 찾아내기란 어렵다.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그래도 꾸준히 작품이 소개되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조성해 “이제 그동안의 업적을 상으로 인정받을 때가 됐다”는 시기가 오기는 한다.

그러나 싸이처럼 사전 배경 없이 터지는 빅 히트 상품은 아무리 그 이유를 분석해 성공을 재현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용 영화라고?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 상을 받아봐라”라는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아무리 기획하고 의도한다고 해서 영화제 수상작을 만들어내기란 힘든 일이다. ‘타의로 한류 스타’가 된 싸이에게 물어도 “나도 잘 모르겠다”는 답이 나올 것이다. 공산품이라면 유행을 파악해 비슷하게 디자인하고 비슷한 기능을 넣어 만든 상품을 내놓아 히트시키는 게 가능하겠지만 문화예술은, 더구나 세계적인 빅 히트작은 그렇지 않다. 받아들이는 시장의 상황과 공급자의 요구와 시대적인 흐름, 세밀한 감각 등이 기가 막히게, 운 좋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의도한다고 해서 쉬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유럽 예술영화계에서는 중국, 일본, 이란 등에 이어 십여 년 전부터 한국 영화라는 새로운 아이템에 계속 주목해 왔고, 김기덕의 영화가 마침내 그랑프리로 추인을 받았다. 한국 문화상품의 성공은 아마도 미국 시장이 다양한 민족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상품의 필요를 느낄 때쯤 그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 상품이 딱 눈에 띄게 된 것이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 산업적으로나 여러 이유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졌다는 것도 배경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있다. 김기덕이나 싸이가 오랜 시간 지켜온 ‘나만의 세계’, 즉 오리지낼러티다. 김기덕은 영화산업계에서 이미 스스로도 사망선고를 내릴 정도였고, 시장 역시 그러했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죽을 만큼 힘들게 버티면서 자신만의 무엇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그는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함으로 빛나는 훈장을 받았다. 싸이 역시 음악성을 인정받지도 못했고 독특한 취향이나 행동 역시 그랬지만 결국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글로벌 성공은 그것으로 가능했다.
그러니 만약 김기덕과 싸이의 성공을 재현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제2의 김기덕’ ‘제 2의 싸이’를 만들기 위해 돈을 퍼붓고 머리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수상작을 분석하고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해줄 수 있는 것은 수만 명의 문화예술계 아티스트들이 수만 개의 오리지낼러티를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일밖엔 없다. 결국 문화예술이란 남들과 다른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모두가 한 가지만, 모두가 교과서적으로만 하지 않고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나를 지켜야 수만 가지의 오리지낼러티가 나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그 수만 가지 중의 하나가 또 언제 세상과 맞아떨어져 세상을 뒤집어놓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그 확률은 올라갈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던가. 한국과 세계의 벽이 사라진 오늘엔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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