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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PIGS 탈출 471조원 독일·프랑스로 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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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내 자본 쏠림이 심각하다. 돈이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에서 빠져나가 독일과 프랑스에 집중되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이른바 ‘PIGS’ 국가들에서 유로존의 부국들로 돈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쏠림현상은 유럽엽합(EU) 단일통화 분석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유로의 아버지’ 로버트 먼델 홍콩중문대 교수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먼델 교수는 평소 “단일 통화권 내에선 외환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고 금융 시스템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며 “덕분에 예금 등 자본이 한 곳에서 이탈해 다른 곳으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12개월(지난해 8월~올 7월) 사이에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에서 빠져나간 자본(예금)이 3260억 유로(약 471조원)에 이른다. 올 한국 예산보다 100조원 이상 많은 돈이다.

 블룸버그는 “이탈한 자금의 90% 이상인 3000억 유로가 독일과 프랑스 등으로 흘러들었다”고 이날 전했다. 스페인 등의 시중은행이 신뢰를 잃는 바람에 자금이 안전지대로 피신한 셈이다.

 자본 쏠림은 올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 올 1~7월 사이 스페인 시중은행 예금은 7%나 줄었다. 지난해 6~12월(7개월) 사이엔 약 4% 감소했을 뿐이다. 포르투갈 사정은 더 심하다. 두 기간 사이 예금 감소율은 1%(지난해 6~12월) 대 10%(올 1~7월)다. 아일랜드와 그리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들 나라의 시중은행은 아우성이다. 빠져나가는 돈을 잡기 위해서다. 경쟁적으로 높은 예금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 은행들이 최근 내놓은 저축상품 금리가 연 5%에 이른다. 독일과 프랑스 등의 예금금리는 2~3% 수준이다. 그 바람에 네 나라의 대출금리도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리스의 일반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금리는 평균 7% 선이다. 스페인 등은 6.5% 수준이다. 반면에 독일 일반 기업들은 연 4% 정도 이자만 내고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다. 전형적인 ‘금융 파편화’다. 먼델 교수가 말했던 ‘단일 통화권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금융’의 반대 현상이다. 서로 다른 통화를 쓰는 남미 지역처럼 금융이 나라별로 따로 논다는 얘기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 파편화가 단일 통화 시스템의 중요한 이점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로 유로존 내에서 기업들이 국경을 뛰어넘어 거의 비슷한 이자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다. 그 후폭풍은 바로 침체 심화다. 남유럽 시중은행들의 부실화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는 부작용이다. 요즘 스페인 시중은행들은 4% 후반에 자금을 유치해 표면금리가 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국 정부의 국채를 사들인다. 돈을 잃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자본 쏠림 현상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자본 쏠림이 유로존을 위협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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