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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본인들, 마상재 구경 중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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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선통신사의 마상재를 구경하고 있는 일본 무사들을 그린 ‘마상재도(馬上才圖)’의 일부분. 일본 고려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을 부산 조선통신사역사관에서 빌려왔다.
서고 … 주마입마상(走馬立馬上) 달리는 말 위에 서기
눕고 … 종와침마미(縱臥枕馬尾) 말꼬리를 베고 누워 달리기
물구나무서기 마상도립(馬上倒立) 물구나무서서 달리기

전 세계가 가수 싸이의 말 타는 자세를 코믹하게 표현한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말 타는 모습에 열광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와 함께 일본에 온 ‘마상재인(馬上才人·말 위에서 묘기 부리는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지금의 이병헌 등 한류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모두 12차례 일본을 찾았다. 그러나 비정기적인 방문으로 일본인들이 조선통신사 마상재인들의 묘기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일본인 사이에는 “살아생전에 마상재를 두 번이나 봤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학산록’이라는 일본의 기록에는 “조선국의 마상재는 실로 절묘하고 기묘한 기예”라고 적혀 있다.

 부산시는 12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마상재의 기록을 볼 수 있는 특별 전시회를 동구 범일동 조선통신사역사관(이하 역사관)에서 연다. 조선통신사학회에 따르면 조선통신사에 마상재가 포함된 것은 4회째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찾은 1636년부터다. 일본 본국의 요청으로 당시 대마도주였던 소 요시나리가 조선에 요청하면서 성사됐다.

 조선의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보면 마상재의 묘기는 모두 8가지 다. 주마입마상(走馬立馬上·달리는 말 위에 서기), 좌칠보와 우칠보(左七步와 右七步·말과 함께 7걸음 달리다 좌나 우에서 말을 뛰어넘기), 마상도립(馬上倒立·말 위에서 물구나무서서 달리기), 횡와양사(橫臥佯死·말 등에 누워 죽은 듯이 달리기), 우등리장신과 좌등리장신(右登裏藏身과 左登裏藏身·말의 좌우에 엎드려 숨어서 달리기), 종와침마미(縱臥枕馬尾·말꼬리를 베고 누워 달리기)가 그것이다.

 김명윤 역사관 운영담당자는 “중앙아시아에서 전래된 마상재가 언제 조선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면서 “ 이성계가 원나라 군대와 전투를 벌일 때 적이 찌른 창을 말 위에서 몸을 숙여 피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 고려시대 말기에는 마상재의 기초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마상재도(馬上才圖·일본 고려미술관 소장)’와 마상재도권(馬上才圖券·부산박물관 소장) 두 그림은 모두 말 위에서 펼쳐지는 묘기가 담겨 있다. 마상재도는 1784년 10회째 조선통신사의 마상재를 소재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말 등에서 서거나, 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등의 곡예를 하는 모습을 일본 무사들이 구경하고 있다. 마상재도권에는 8가지 마상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마상재인의 모습 등을 표현한 닥종이 인형 4점도 전시된다.

 조선통신사학회 총무이사인 한태문(부산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는 “문(文)보다는 무(武)를 더 중시했던 당시 일본의 분위기가 마상재가 인기를 끈 이유로 해석된다”며 “조선에서도 통신사 일행이 지나가는 경북 영천과 부산에서 많은 구경꾼이 몰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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