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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한국 인디계 신화 '크라잉 넛'

중앙일보

입력

서울 동부 이촌동에 네 명의 소년이 있었다. 1976년생 동갑에 키와 성격이 비슷한 이들은 친형제처럼 어울려 자랐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뉴키즈 온더 블록부터 메탈리카까지, 한 명이 앨범을 사면 모두가 돌려가며 들었다. 온갖 음악 가운데도 펑크록의 원조 섹스 피스톨스가 이들의 눈을 번쩍 띄게 만들었다.

서울 중경고 2학년에 다니던 1993년 어느날, 그들은 용산 전자상가에 몰려갔다. 집으로 오는 길. 배가 고파 길거리에서 호두 과자를 사 먹었다. 먹고 보니 버스비가 없었다. 터덜터덜 집까지 걸어가며 대화가 오갔다.

"우리 정식으로 밴드를 하자" "이름은 뭘루 하냐" "호두과자 먹으며 징징거리고 있으니까 크라잉 너트라고 할까" "너트는 땅콩이잖아" "뭐 어때" 등.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네 명으로 구성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 3때 한 폐가(廢家) 에 친구들을 불러모아 '공가(空家) 라이브' 라는 공연을 열었다. 지금까지 2천회가 넘는 공연을 펼친 이들의 첫 무대였다.

대학에 들어간 95년 3월 처음으로 홍대 부근 드럭을 찾았다. 이들이 지금도 '아저씨' 라고 부르는 이석문 대표가 운영하는 펑크 클럽. 이 때만 해도 전속 밴드는 없었다. 섹스 피스톨스와 너바나의 판만 하루 종일 돌아갔다.

두 달 뒤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오디션을 자청했고, 그 결과 정기 공연을 허락받았다. 드럭과 크라잉넛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크라잉넛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펑크록 밴드 노브레인도 이 때 드럭에서 함께 활동했다. 크라잉넛은 이 때부터 매주 3~4일씩 공연했다.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이듬해 어느날 새벽 "우리 밖으로 나가 보자" 고 결심했다.

96년 홍대 앞에서 펼쳐진 '스트리트 펑크 쇼' 는 그렇게 시작됐다. 같은해 하드록 그룹 옐로우 키친과 함께 '아워 네이션 1집' 을 내놨다.

독립 레이블 드럭의 첫 앨범이다. 유통사들은 외면했다. 낡은 승합차에 CD와 테이프를 싣고 전국 레코드 가게를 돌며 직접 팔았다. 99년 내놓은 2집 타이틀곡 '서커스 매직 유랑단' 은 한가한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그 때 겪은 신산(辛酸) 했던 삶의 기록이다.

98년 마침내 첫 독집 앨범을 발표했다. 타이틀곡 '말달리자' 를 비롯한 이들의 펄펄 살아 뛰는 노래들에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전국을 돌며 노래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홍보도 할 수 없었던 상황. 판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두 7만장이 팔린 이 앨범은 한국 인디 계열에 하나의 신화로 남아 있다.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지난해 후지록 페스티벌, 인 더 시티 재팬 음악박람회, 도쿄 슈퍼 엑스포 특별공연 등을 통해 일본 음악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크라잉넛은 DJ DOC와 조인트 콘서트, 영화 '하면 된다' 음악 참가, 극장용 CF촬영 등으로 소위 '주류' 대중음악계 정복에 나섰다.

크라잉넛에게 올해는 커다란 분수령이 될 듯 하다. 1년여 만에 발표한 3집 '하수연가' (下水戀歌) 는 놀랍다. 크라잉넛 특유의 날것 같은 에너지가 살아있는 가운데 가사와 곡 양면에서 놀랍도록 성숙해진 모습에 박수를 아낄 수 없다.

너트(팬들은 흔히 그렇게 부른다) 의 팬이라면 더욱 기꺼워 할 것이고, 이들을 잘 모르는 록매니어라면 눈이 번쩍 뜨일 것으로 생각한다.

열세곡 가운데 대중에게 먼저 다가갈 곡은 '밤이 깊었네' 다. 베이스 주자 한경록이 만든 이 노래(크라잉넛은 공동창작이라는 애매함을 거부하고 창작자를 분명히 밝힌다) 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연주에 멤버들의 중창을 더한 중간 템포의 차분한 곡이다.

음악적으로는 '금환식' (이상면 곡) 을 우선 주목한다. 전통적 가락의 기타 연주, 사물놀이패 대한사람의 협연이 한데 어우러진 한국적 록의 걸작이다.

이외에도 베이스 연주가 곡 전반을 리드하는 가운데 아코디언.첼로 연주가 슬픈 가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우울함을 만들어내는 '붉은 방' (한경록 곡) 등 대부분의 노래들이 수작이다.

펑크 공동체 드럭은 크라잉넛을 주연으로 한 장편 디지털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 을 제작했다. 1억여원의 저예산으로 지난해 여름 찍은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관객과 평론가들의 몫일 것이다.

오는 9일 오후 5시 정동이벤트홀에서 시사회와 함께 3집 발매 기념 공연이 펼쳐진다. 1588-1555. 02-326-3085.

장시간 인터뷰가 있었던 지난달 29일 오후. 크라잉넛은 다시 그들의 마차라고 할 승합차에 올랐다. 광주로 가는 길이었다. 이어 전주, 대전 그리고 다시 서울, 다시 지방으로 향할 것이다. 서커스 매직 유랑단처럼.

그들의 노래를 기다리는 이들을 찾아. 진짜 음악, 진짜 노래, 진짜 뮤지션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다.

(http://www.drugrecords.co.kr) 참고.

■ 수다담론:스타에 대한 수다 - 강추! 크라잉넛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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