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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루이뷔통 회장 ‘증세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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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럭셔리의 황제’ 베르나르 아르노(63)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이 벨기에 시민권을 신청했다. 프랑스 북부 지역에서 태어난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으며, 그의 회사도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가 벨기에 국적을 얻으려는 것은 프랑스 정부의 ‘부자 증세’에 대한 반발로 해석되고 있다.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및 유럽의 최고 부자며, 세계 부자 서열 4위다. 재산 규모는 410억 달러(약 46조원)로 추산되고 있다. LVMH 그룹은 루이뷔통·디오르·불가리·쇼메·지방시·겐조 등의 패션 브랜드와 헤네시(코냑)·모에샹동(샴페인) 등의 주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의 벨기에 시민권 신청은 8일(현지시간) 벨기에 일간지 라리브르 벨지크의 보도로 알려졌다. 그가 지난주 벨기에 귀화위원회에 서류를 접수시켰다는 내용이다. 자국 최고의 부자가 이웃 나라로 국적을 옮기려 한다는 소식에 프랑스가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한 일이다. 사회당 정부에 대한 우파의 공격이 포문을 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는 “잘못된 결정은 결국 재앙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부자들에게 큰 세금을 물리려는 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5월 17년 만에 우파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 연소득 100만 유로(약 14억3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는 소득의 75%를 세금으로 징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은 현재 입법화를 앞두고 있으며,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LVMH 측은 아르노 회장의 벨기에 시민권 신청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금 문제 때문이 아니라 벨기에에서의 사업 확장에 필요해 한 일이며,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국적도 계속 보유하고 세금도 프랑스에 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간지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들은 최근 아르노 회장이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총리에게 지나친 세금 문제를 지적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정부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LVMH와 같은 고가품 제조·유통업체들은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가 사업을 위축시킬 것을 걱정해왔다. 이들은 “부자들의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경기 회복도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당 정부는 그러나 “75% 소득세율 적용 대상은 0.05% 정도의 소수에 불과하며, 이들은 좀 더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영국의 부동산 컨설팅회사 나이트 플랭크에 따르면 최근 런던 부동산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투자가 부쩍 늘었다. 이 같은 현상에는 프랑스 정부가 소득세뿐만 아니라 재산세도 크게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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