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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시인 윤동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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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서시’는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중국 조선족 윤동주’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주 취재차 들렀던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 포장된 들길을 달려 도착한 밍둥춘(明東村) 윤동주 생가는 새 단장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에 없던 시멘트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고, 정문도 만들어 놓았다. 정문 옆 바위에는 ‘中國朝鮮族愛國詩人尹東柱故居(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는 말에는 결국 그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동행한 지인들이 한마디씩 했다. ‘고구려 역사까지 빼앗으려 하더니 이제는 시인까지?’ ‘그러면 교과서의 원작자를 중국 조선족 윤동주로 바꿔야 하나?’ 윤동주는 분명 우리 한민족의 시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룽징에서 자랐지만 왕성하게 작품 생활을 했던 시기에는 평양(숭실중학), 서울(연희전문), 교토(유학) 등에서 보냈다.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했지, 중국인을 위해 붓을 들지는 않았다. 모든 작품은 아름다운 한글로 쓰여졌다. 이런 그가 중국인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 조선족 동포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조선족 윤동주’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함께 방문한 한 옌볜대 교수(조선족)는 “조선족 문인들이 새 단장 사업을 주도했다”며 “바위 글씨도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주장을 지낸 이덕수씨가 쓴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단장된 윤동주 생가는 위기에 빠진 조선족 커뮤니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조선족 사회는 지금 위기다. 젊은이들이 외부로 나가면서 옌볜지역 주민 중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에 불과하다. 1953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소수민족 동화정책으로 민족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다. 현지에서 ‘조선족 윤동주’는 정체성 회복의 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동행 교수는 “한국이 옌볜지역 조선족 사회 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되물었다. ‘중국 다른 곳에는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옌벤지역에는 제대로 된 투자 프로젝트 하나 없는 게 현실 아니냐’는 지적이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조선족 동포들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후대 조선족들은 ‘윤동주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통일을 준비하고 동북아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지금 말이다. 혹 우리는 후대들에게 ‘한 점 부끄럼’을 남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룽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