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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대선, 연애가 아니라 결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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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국민에게 대통령은 남편이다. 대선은 국민이 남편을 고르는 것이다. 이혼하지 않는 한 국민은 대통령과 5년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선은 검증이 필수다. 연애는 외모와 스타일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은 따져야 한다. 경제력·집안·성격·책임감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특히 친구를 봐야 한다.

 연애 상대로 ‘짱’이라고 반드시 훌륭한 남편감은 아니다. 정치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인기가 높다고 좋은 대통령감이 되는 건 아니다. A급 후보가 되려면 ‘결혼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를 통과하지 못한 대표적인 이가 박찬종 전 의원이다. 1992년 5선 의원 박찬종은 대통령에 출마했다. 신정당(新政黨) 후보지만 사실상 무소속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자당 김영삼, 민주당 김대중, 국민당 정주영은 자금이 풍부하고 당세(黨勢)가 든든했다. 반면에 박찬종은 돈과 조직이 거의 없었다. 박찬종은 ‘나 홀로’ 선거운동을 했다. 추운 날씨에 트렌치코트(trench coat)를 입고 거리에서 목이 쉬어라 유세를 했다.

 6.4%로 4등이니 결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박찬종은 국민의 망막에 깊이 박혔다.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치지도자’가 됐다. 이미지 덕분에 그는 우유 광고도 맡았다. 무균질 우유를 선전하면서 ‘이 우유처럼 깨끗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사실 우유는 무균질(無菌質)이 아니라 무균질(無均質)이었다. 지방을 잘게 부수는 균질(均質) 공법이 아니어서 원래의 맛에 가깝다는 것이다. ‘깨끗’하고는 상관없는데 박찬종과 무균질이 어우러져 환상을 만들어 냈다.

 어쨌든 박찬종은 무균질 정치인이 됐고 국민은 그런 무균질에 끌렸다. 97년 다시 대선의 해가 밝았다. 신한국당 주자 중에서 여론조사 1등은 박찬종 고문이었다. 이회창·이한동·최형우·김덕룡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뒤로 처졌다. 1월 1일 방배동 빌라는 손님으로 넘쳐났다. 박찬종 바람이 분 것이다. 그러나 몇 달 못 가 바람은 사라지고 말았다. ‘결혼 검증’에 걸린 것이다.

 5년 전 박찬종은 사실상 무소속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당 경선을 치러야 했다. 국민은 조직 내 대인(對人)관계와 리더십을 따졌다. 홀로 거리를 누빈 박찬종이 거대 정당에 들어갔으니 어떻게 하는지 본 것이다. 박찬종은 시험에서 실패했다. ‘나 홀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력을 얻지 못하자 돌출행동을 했다. 경선 규칙을 비난하고 돈 선거 의혹을 터뜨렸다. 그러나 근거 부족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마지막 날 박찬종은 경선을 포기하고 말았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대선주자는 연애 상대이지 결혼 상대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아직까지는 연애 상대라고 봐야 한다. 그는 학벌이 좋고 벤처기업가·교수·강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런 것들은 연애 상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요소다. 하지만 결혼 상대로서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가 치러야 할 검증은 여러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게 언행일치와 친구관계다. 믿을 수 있어야 평생을 맡기고, 친구를 봐야 사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집안과 학벌이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결혼은 위험하다.

 ‘안철수 파동’에 세상이 시끄럽다. “태섭이, 준길이” 소리가 나오고, “사찰하고 협박했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친구 간 대화까지 까발리니 난세(亂世)요, 탁류(濁流)다. 그러나 어지러운 것만은 아니다. 진흙이 가라앉으면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일 것이다. 결혼 검증이란 물고기다.

 유권자는 묻는다. 26세에 딱지아파트를 받았는데 무엇이 ‘집 없는 설움’인지, 사외이사로 수억원 벌었는데 대기업 감시는 제대로 했는지, 친한 재벌 탄원서 써주고 왜 후회한다고 하는지, 군대 가는 모습은 왜 거짓으로 말했는지, 촛불·용산·제주기지·천안함에 대해선 제대로 공부했는지…. 사람들은 묻는 것이다.

 검증을 통과하면 안철수는 훌륭한 결혼 상대가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한순간 연애 상대로 그칠 것이다. 트렌치코트의 아련한 추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