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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여자도 군대 가자 요모조모 따져보면 못 갈 이유도, 안 갈 핑계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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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너희 여자들, 군대 가서 죽도록 매 맞아봤어?”

남녀차별 얘기만 나오면 남자들이 내뱉는 말. 그들이 말하는 군대가 여자도 갈 수 있는 장교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거기 가서 죽도록 매 맞고 싶은 맘이야 없지만 여자라고 군대 못 갈 이유는 또 뭔가 생각했다.

 요즘 전쟁이 육탄전도 아니고 첨단무기 경쟁전인데 컴퓨터, 위성로봇 등의 첨단장비 조작에 굳이 여자라고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해서다. 여자가 낀다면 ‘매 맞는 군대’를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남자보다 협상 능력이 뛰어난 여자가 외교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막는 역할도 잘 해낼 것 같고. 군 복무 기간도 단축되고, 그때 비로소 확실한 남녀평등이 될 터인데.

 이런 상상,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숙명여대 ROTC가 6월 25일부터 8월 21일까지 논산훈련소에서 펼쳐진 하계 훈련에서 다른 대학 남자 후보생들을 제치고 올해 군사 훈련을 한 110개 학군단 중 종합 1위를 했다고 한다.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철조망 빠져나가기, 포복, 사격, 화생방까지. 특히 박윤경(체육교육과 4학년·51기)은 2분 동안 윗몸일으키기를 124개나 해서 특급(여성 특급 기준은 67개, 남자는 78개)을 받았다고 한다.

 훈련에 남녀 구분도 없었고, 내무반만 따로 쓸 뿐 학교와 성별도 섞어 함께 훈련 받았으며, 수류탄(남자 20m, 여자 15m)을 제외하고는 남자나 여자나 합격 기준도 똑같다고 한다.

 ‘여자가 군대를? 화장하던 손으로 수류탄이나 제대로 던질 수 있겠냐, 하이힐이나 신던 발이 부르트도록 걷기를 하겠냐’ 하던 마초들의 비웃음.

 그들이 정확히 보긴 했다. 작년에는 수류탄 훈련이 109위로 꼴찌였고 400m 운동장 세 바퀴 도는 것도 힘겨워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10바퀴도 거뜬히 돌 만큼 체력도 좋아졌고, 124개의 윗몸일으키기와, 지난해 꼴찌였던 수류탄 던지기도 1위가 됐단다. 하긴 올림픽 경기를 보면 활이나 총이나, 모든 전쟁무기 다루는 솜씨도 여자들이 앞서긴 하던데.

 남자는 죽어도 가야 되고 여자는 죽어도 가지 못했던 군대. 이제 노력하면 체력도 뒤지지 않는다는 결과까지 확실히 증명이 됐으니 여자들이 ‘가지 못할 핑계거리’가 없어졌다.

 성 평등이란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평등해야 한다. 군 가산점 위헌소송 낼 때 ‘차별 느끼지 않게 해 달라’ 주장했던 것처럼 이제는 ‘왜 여자는 군대 못 가게 하냐’며 헌법소원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징병제를 (남녀)모병제로 하고 시설을 안전하게 잘 만들든지, 헌법을 바꿔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지게 하든지. 하루 이틀에 바꿀 수야 없겠지만 이제 슬슬 생각해볼 때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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