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이번 수상은 한국영화 100년사에 최대 쾌거입니다.”
한국 예술영화 해외진출의 1등 공신인 김동호(75)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최고의 영광을 안은 김기덕 감독에게 전하는 축하인사다. 그는 9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1년 ‘라쇼몽((羅生門)으로 그랑프리를 받은 이후 일본영화계가 중흥기를 맞았듯 김 감독의 쾌거는 최근 활력을 되찾고 있는 충무로가 일대 도약하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이번 수상은 산업적·예술적으로 성숙해가고 있는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 동안 국제영화제에서 꾸준히 낭보를 알려왔지만 중국·일본 등에 비해 ‘변두리’로 인식됐던 한국영화의 파워를 당당하게 알리게 됐다
◆한국영화의 꿈=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영화는 1980년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광수·이명세·장선우 감독 등 젊은 감독들의 수작이 나오면서부터다. 87년 강수연이 ‘씨받이’(감독 임권택)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세계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래 수상기록 참조]
200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르네상스를 맞는다.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친구’(2001),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등 초특급 히트작이 잇따랐다. 대기업 자본이 충무로에 들어오면서 제작-배급-상영이란 산업적 시스템도 완비 됐다. 그만큼 시장의 파이가 커진 셈이다.
드라마·가요에 밀려 주춤했던 충무로는 올해 다시 활개를 펴는 모양새다. 1200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 등 화제작이 쏟아지면서 올 상반기 한국영화 관객수는 총 4418만 명(영화진흥위 집계)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6%나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2006년 상반기보다 270만 명이 많은 수치다.
특히 지난달 한국영화는 70.2%라는 놀라운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영화 제2 전성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기덕 감독의 수상 밑바탕에도 이런 ‘한국영화(K-Movie)의 힘’이 깔려있다. 영화평론가 곽영진씨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영화가 좋더라’라는 식의 인지도가 올라간 게 김기덕 감독 수상의 배경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작가영화의 약진=충무로는 그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주의 감독을 꾸준히 배출해냈다. 이창동·홍상수·박찬욱·김기덕 등이다. 실제로 세 감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왔다. 한국전쟁·산업화·민주화라는 한국 특유의 역동적 현대사가 이들 감독들의 영화적 자양분이 됐다.
영화평론가는 강유정씨는 “내수시장에서 대중영화가 잘 팔리면서 한 축에서는 예술영화도 공존하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 별로 없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특수성이자 저력”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감독 개인의 역량이 돋보이는 스토리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며 “김기덕·박찬욱·이창동 이후 세대의 신인감독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부산영화제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가 놀랍게 성장한 만큼 그 뒤에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자본과 창작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과 지원 등 장기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계 3대 영화제 한국영화 수상 기록
▶1961년 ‘마부’(감독 강대진) 베를린 특별은곰상
▶1987년 ‘씨받이’(임권택) 베니스 여우주연상(강수연)
▶2002년 ‘취화선’(임권택) 칸 감독상
▶2002년 ‘오아시스’(이창동) 베니스 감독상(은사자상) 신인배우상(문소리)
▶2004년 ‘사마리아’(김기덕) 베를린 감독상(은곰상)
▶2004년 ‘올드보이’(박찬욱) 칸 심사위원대상
▶2004년 ‘빈집’(김기덕) 베니스 감독상(은사자상)
▶2007년 ‘밀양’(이창동) 칸 여우주연상(전도연)
▶2009년 ‘박쥐’(박찬욱) 칸 심사위원상
▶2010년 ‘시’(이창동) 칸 각본상
▶2010년 ‘하하하’(홍상수) 칸 ‘주목할 만한 시선’상
▶2011년 ‘파란만장’(박찬욱·박찬경) 베를린 단편부문 금곰상
▶2011년 ‘아리랑’(김기덕) 칸 ‘주목할 만한 시선’상
▶2012년 ‘피에타’(감독 김기덕) 베니스 황금사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