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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낯선사람이…" 나주 '고종석 트라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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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종석 사건이 발생한 나주시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들과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일제히 개학한 나주 시내 초등학교에서는 부모들과 함께 등하교를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프리랜서 오종찬]

“쓰레기 버리러 나가기도 무서워요. 대낮에도 낯선 사람만 보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지경이에요.”

 3일 오후 7시 전남 나주시 삼영동 영산대교 앞에서 만난 행인은 종종걸음으로 귀갓길을 재촉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차량들이 다리를 지날 뿐 행인들의 발걸음은 뚝 끊겼다. 평소 운동하는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려는 학생들로 북적였던 다리 아래 둔치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고종석(23·구속) 사건이 나주의 거리 풍경을 바꿔놓았다. 사건 현장 인근 마을은 집집마다 대문이 굳게 잠겼다.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있다.

 PC방과 식당, 편의점 등이 밀집한 상가에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눈에 띄게 사람들이 줄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가끔 길거리를 지나는 주민들은 불 꺼진 A양의 집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A양의 집안은 사건 이후 설치한 병풍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먼발치서 집 쪽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고종석이 평소 자주 찾던 PC방 인근에서 가게를 하는 박모(40·여)씨는 “고종석 사건이 난 다음부터는 해 질 무렵부터 거리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범인이 현장 검증 때 A양을 이불에 싸서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손발이 벌벌 떨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대낮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건 현장 인근의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4㎞가량 떨어진 지역에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부모들이 크게 늘었다. 회사원 정선기(39)씨는 “신문에 난 성폭행 기사를 보고는 아이 2명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데려다줬다”며 “하교 때는 아내를 보내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서와 시장 등이 밀집한 나주 시내 중심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개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이 부모들의 손을 꼭 잡고 등교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나주경찰서 인근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모(20)씨는 “고종석 사건 이후로는 주말 저녁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매출이 절반 정도 떨어졌다”며 “시내까지 성폭행 사건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주 토박이라고 밝힌 한성필(57)씨는 “한때 번창했던 나주가 가뜩이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흉악한 이번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주민들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3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상권이 번창했던 곳이다. 영산포 장은 전국에서 가장 물산이 풍부한 5일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75년 영산강 하구언 건설 이후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지금은 인구 8만8000여 명의 중소도시가 됐다. 특히 영산포 일대의 구도심권은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2001년 호남선 복선화 공사에 따라 영산포역이 없어진 이후에는 급격히 상권이 위축됐다. 고종석 사건이 일어난 곳도 구도심권이다. 평생을 나주에서 살아온 김선규(67·나주시 내동)씨는 “도시 발전은 지체됐지만 그래도 살 만한 곳이었는데…”라며 혀를 찼다.

나주=최경호·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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