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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당적 대통령과 여당 후보 만남 … 10년 만에 처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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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단독 오찬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후보는 “지금 수해로 현장에선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기준 미달로 아무 지원을 못 받는 사각지대가 많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사각지대 농어민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챙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2일 회동은 김대중(DJ) 정부 임기 말인 2002년 이후 10년 만에 보는 여당 소속 대통령과 여당 대통령 후보 간의 만남이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는 지난해 6월에도 한 시간 가까이 독대했으나 당시는 박 후보가 대통령후보 신분이 아니었다.

 한국 정치에서 집권 여당 후보들은 임기 말 지지율이 떨어진 현직 대통령을 대부분 ‘차별화의 대상’으로 여기곤 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후보(1992년), 김영삼 대통령과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97년),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2007년) 간의 관계를 이런 범주에 둘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의 거국중립내각 요구에 의해 92년 9월에, 김영삼 대통령은 검찰의 DJ 대선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에 따른 이회창 후보의 탈당 요구에 의해 97년 11월에 각각 떠밀리듯 여당을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중진이던 정동영 전 의장의 당 해체 움직임에 반대하면서 2007년 2월 스스로 당을 떠났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4월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만난 이후엔 여당 당적을 가진 대통령과 여당 후보 간의 회동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2007년 10월 열린우리당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이 헤쳐 모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정동영 후보가 선출되자 그와 만나지 않고 전화통화만 했었다.

 이날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만남은 대통령과 여당 후보 간의 이 같은 갈등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양측의 교감 속에 이뤄졌다.

 박 후보의 한 핵심 측근은 “박 후보도 지금 이 대통령을 만나는 게 자신의 지지율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박 후보는 그동안 집권 말이면 으레 쫓겨나다시피 탈당했던 ‘대통령의 불행’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먼저 회동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로선 역대 여당 대선후보들과는 다른 ‘역발상’의 선택을 한 셈이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만남은 2007년 대선 이후 아홉 번째다. 두 사람은 만나고 나면 ‘뒤끝’이 안 좋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총선을 앞둔 2008년 1월엔 공정한 공천에 합의했으나 이후 극심한 공천 파동을 겪었고, 2009년 9월엔 세종시 문제에 공감했다고 발표했으나 오히려 세종시 문제로 갈등한 식이었다. 그러나 2010년 8월 21일 회동 이후 기류가 달라졌다. 당시 95분간의 회동 후 이정현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이 대통령과 박 후보 사이에 대해 청와대나 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은 “둘 사이 대화는 잘되고 있다”고 말해 왔다. 이 대통령 주변의 비리 논란이나 새누리당 돈 공천 의혹사건이 불거졌을 때 당에선 “청와대와 단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박 후보가 직접 호응한 적은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오늘 회동을 계기로 이 대통령은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대통령은 88년 전두환 대통령 이후 여당 당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무리하는 첫 대통령이 된다.

고정애·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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