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무대 선 22세 ‘한국의 폴 포츠’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소녀와 협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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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주최 ‘나눔음악회’가 2일 서울 용산아트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리허설에서 어린이재단 홍보대사인 최성봉씨가 시각장애인인 유예은양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마이 웨이’를 부르고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한 최씨는 ‘한국의 폴 포츠’로 불린다. [신인섭 기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무대에 등장했다. ‘한국의 폴 포츠’로 불리는 성악가 최성봉(22)씨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유예은(11)양을 피아노로 이끈다. 예은이의 가녀린 손이 ‘You raise me up’을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1절이 끝나자 최씨가 이어받는다.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운 덕분에 폭풍의 바다를 건널 수 있어요)”

 최씨는 예은이의 반주에 맞춰 ‘마이 웨이(My Way)’를 열창했다. 최씨가 중간에 “여러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자 1000여 명의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한다. 노래를 끝내고 최씨가 예은이의 손을 잡고 인사하자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두 사람이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박수가 이어졌다. 일부 관객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김영후(54·약사)씨는 “최씨가 살아온 환경이 희망을 갖기 어려워 보이는데 희망을 전파하려고 무대에 선 것을 보니 의지가 강한 것 같다”며 “그런 모습을 확인하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2일 오후 3시 서울 용산아트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 주최 나눔 음악회 오프닝 무대에 섰다. 22년의 굴곡진 인생의, 가슴속의 한을 토해내는 듯했다. 최씨는 이 재단 홍보대사이다.

 세 살부터 고아원 생활, 10년 이상 유흥가에서 껌팔이, TV 오디션 프로그램 준우승…. 성봉의 반전(反轉) 인생은 세상의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성봉은 5세에 구타를 견디다 못해 서울의 한 고아원 ‘탈출’을 감행한다. 무작정 타고 간 버스에서 내린 데가 대전 용전동. 나이트클럽·단란주점 등에서 껌·박카스를 팔았다. 나이트클럽 계단에서 잠자다 쫓겨나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잤다. 마약 운반, 빈집털이, 마약·부탄가스·본드 흡입 등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의 강권에 못 이겨 왼쪽 무릎을 보여줬다. 울퉁불퉁한 상처가 드러났다. 성봉은 “인간 말종 같은, 쓰레기보다 못한 버러지처럼, 바퀴벌레처럼 살았다”고 표현한다.

 반전의 기회가 왔다. 포장마차 아줌마가 ‘지성’이란 이름을 줬고 14살 때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다 실명을 찾았다. 15세에 야학에서 한글을 배웠다.

 ‘성악 레슨 합니다.’

폴 포츠

 성봉의 인생을 바꾼 인터넷 광고다. 광고를 낸 박정소(당시 배재대 음대생)씨에게 매달렸다. 박씨는 성봉의 대전 예술고 입학을 도와 성악에 눈뜨게 했고 거처를 제공했다. 껌팔이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본 성악가에게서 잉태한 꿈을 찾아 나섰다. 마침 어린이재단이 후원자로 나서 큰 힘이 됐다. 박씨는 한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권했고 지난해 8월 ‘넬라 판타지아(환상 속으로)’로 준우승했다. 세상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성봉은 이미 유명인이 돼 있었다. 강연과 해외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얼마 전에는 자서전 『무조건 살아, 단 한 번의 삶이니까』를 냈다. 이달 말에는 유튜브 페스티벌에서 폴 포츠와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요즘 말기암 환자, 사춘기 청소년 등 어려움에 빠진 이들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는 책 제목대로 답한다. “나 같은 인생을 보고도 죽으려 하나.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나의 존재가 힘이 되고, 내 인생이 한 사람의 눈망울을 적실 수 있으면 그게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내가 저지른 못된 짓을 용서 받는 길이기도 하고요. 나를 필요로 하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폴 포츠=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 2007년 우승자. 가난한 휴대전화 판매원을 하면서 오페라 가수를 꿈꾸다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최성봉씨의 인생 역정이 폴 포츠를 닮아 최씨를 한국의 폴 포츠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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