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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일본 우회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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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일본 국회가 29일 이명박 대통령 비난 결의안을 끝으로 사실상 올스톱됐다. 야당이 제출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 문책 결의안이 참의원(상원)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외교와 내정에 모두 실패해 국익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 노다 정권에는 더 이상 국가를 운영할 능력과 책임감이 없다”고 야당은 주장했다. 우리 입장에선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노다의 철면피 외교가 얄밉기 짝이 없다. 하지만 “노다의 유약한 외교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같은 ‘대형 참사’를 낳았다”는 게 일본 야당의 시각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수적으로 열세인 참의원의 구조상 문책안 통과는 어차피 예상된 수순이었다. 문책안은 구속력이 없어 총리가 곧바로 그만둘 의무도 없다. 노다는 더 버티려 하겠지만 야당은 향후 국회 일정을 보이콧할 태세다. 노다의 저항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노다가 정치생명을 건 소비세 인상에 협조를 얻는 대가로 이미 “가까운 시일 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큰 흐름을 되돌리긴 어려워 보인다.

최종적인 해산 시기를 정하는 건 총리 노다의 권리지만 일본 정치권은 이미 ‘10월 해산-11월 총선’이란 가상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480석의 중의원 의석과 정권의 향배가 걸린 일본 정치의 가장 큰 승부가 임박한 셈이다.

 전쟁의 구도는 이미 짜여 있다. 노다의 민주당과 3년 만의 정권 탈환을 꿈꾸는 자민당, 그리고 장외의 강자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3파전이다. 상황은 민주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여론조사에선 자민당이 가장 앞서 있다. 또 현재 민주당의 실력으론 장외의 하시모토를 이기는 것도 버겁다.

 문제는 민주당의 패배가 한국의 악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8일 “자민당이 집권하면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의 담화를 모두 바로잡겠다”는 종합세트형 망언을 쏟아낸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자민당의 유력한 총재 후보다. 그가 9월 말 총재 선거에서 현재의 온건파 총재를 제압한다면 그의 희망인 ‘총리 재수’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없도록,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든 현재의 헌법과 전후 질서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 총리 재임 시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을 만들었던 그는 이제 실제 헌법 개정으로 과업을 완성하려 한다. 종군위안부와 교과서, 독도 등 각론 문제로 충돌했던 ‘이명박-노다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가 걸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어쩌면 노다와 싸웠던 시절을 추억으로 그리워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게 브레이크 없는 일본 우경화의 답답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