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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산모는 늘고 전문 치료시설 부족 대도시 병원에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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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김선행)가 올 6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산부인과 전문의 559명을 대상으로 분만 근무환경을 설문조사한 결과 28%가 애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만 포기 의사의 60%는 “스트레스가 심해 그만뒀다”고 응답했다. 나이 들면 야간 당직이 부담스럽고, 의료사고가 생기면 폐업으로 몰릴 수 있어 애 받는 일을 멀리한다는 답변이다. 여자 의사는 육아와 야간·주말 당직을 병행하기 어려워 분만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병원 경영 적자(13%), 의료사고로 인한 난동이나 폭력적 진료방해(3%), 의료소송(2%) 등도 분만 포기 이유였다.

 젊은 의사일수록 분만을 더 꺼린다. 조사 결과 40대 의사 중 전문의 자격 취득 후 처음부터 분만을 하지 않은 경우는 1.6%에 불과했지만 30대는 10.2%로 높았다. 40대는 54.4세에 분만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30대는46.1세라고 답했다.

 분만 취약지는 더욱 기피한다. 응답자의 90%가 취약지 근무를 거부했다. 한 의사는 “응급상황에서 산모를 대형병원에 이송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사망 가능성이 크고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령 산모 증가도 분만 기피 요인이다. 2010년 전체 산모의 12%(5만 4000명)가 임신중독증·조산·당뇨병 등 고위험 산모였다. 하지만 진료 체계는 뒷받침이 안 돼 있다. 지방에는 중증신생아용 베드와 인공호흡기, 전문의사와 간호사 등을 갖춘 병원이 없어 서울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에 사는 허모(30·여)씨는 시험관 아기로 쌍둥이를 가진 고위험 산모다. 지난해 12월 임신 23주에 양수가 터졌다. 다니던 병원에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대전의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었다. 서울대병원에 가려 했지만 역시 빈자리가 없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 이틀 만에 미숙아를 낳았다. 진료체계가 엉성한 탓에 한국의 모성 사망비(인구 10만 명당 사망 산모 수)는 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위다. 고위험 산모와 직결돼 있는 중증신생아 병상도 200~600개 부족하다.

중앙일보·인구보건복지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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