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꽌시’없고, 친구 못 만들면 롱런 못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중국인을 친구로 만들지 못하면 중국에서 사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임영철(49·사진) ‘토프톤’ 칭다오(靑島) 법인장의, 23년 중국생활 경험이 녹아있는 충고다. 그는 20주년을 맞은 한·중 수교보다 3년 앞선 1989년 8월부터 지금까지 칭다오 공장을 이끌어 왔다. 단일법인으론 두 번째로 중국에 정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생긴 현지 기업은 철수해 내가 재중(본토) 한국인 중 최장기 체류자일 것”이라고 임 법인장은 말한다.

 토프톤은 오디오·TV·컴퓨터 등에 쓰이는 스피커를 제조하는 업체로 경기도 포천에 본사가 있다. 처음 중국땅을 밟을 때 임 법인장은 26세였다. “KOTRA 주선으로 중국 시찰을 다녀온 회장님이 전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얼떨결에 한 달 동안 중국어를 배우고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왔다”고 회상했다. 수교 전이라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적성국 방문 교육을 받아야 했고 주위 사람들은 ‘그런 곳에 왜 가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중국 측은 한 달 만에 입주 절차를 왼료해줬다고 한다. 50년간 부지 임대 계약을 맺었고 무담보 신용대출까지 받았다. “우리가 처음이니까 부지 임대, 임금 조건 등에서 이후 중국 진출 기업의 기준이 됐다”고 한다. 대출금은 90년대 중반 고의 부도를 내는 한국 기업들이 생기자 갚아야 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시동을 걸 때인 89년 당시 칭다오엔 허허벌판에 내수용 수건·면방직·강철 공장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지만 공장 운영은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었다. 당시 현지인 직원 월급은 90위안(약 1만6000원). 초기 숙련도는 한국인의 80% 수준에 달했다. “생산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다음 원료가 들어올 때까지 한 달 반을 놀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 축소, 인건비 상승 등으로 현재 많은 중국 진출 기업들이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고 있지만 토프톤은 어려움 없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엔 임 법인장의 ‘꽌시(關係·인적 유대)’가 큰 역할을 했다. 진출 초기 ‘젊은 총각’ 임 법인장은 거의 매일 지역 인사들과 저녁 자리를 가지며 친분을 쌓았다. 당시 사귄 말단 공무원들은 지금은 기관장급이 됐다. “중국인은 친구로 여기는 사람에겐 물심양면 도와주려 한다”며 “한국 본사가 현지 법인장을 빨리 교체할수록 그런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충고했다.

 토프톤은 지역 학교에 장학회를 설립하고 임금 인상 요구에도 전향적으로 응해 지역민의 호감을 샀다. 임 법인장은 “현지 노동자들은 경기가 나쁠 땐 무리한 요구를 안 한다. 올려주면 또 요구할까 한국 기업주들이 걱정하지만 경험상 그렇지 않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