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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전기 왜 갑자기 부족해진 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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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올해 유례없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냉방용 전기 소비도 크게 늘었지요. 하지만 에어컨을 맘 놓고 틀지 못한 가정도 많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정전을 우려해 연일 절전 당부를 했지요. 공장도 전기를 아끼느라 끙끙댔고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딴판이었습니다. 전기는 값싸고 맘껏 써도 되는 에너지로 통했으니까요. 대체 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걸까요.

A 6일 오전 11시5분 서울 삼성동의 ‘전력거래소’ 상황실. 갑자기 예비전력 바늘이 266만㎾까지 떨어졌습니다. 예비전력 300만㎾가 붕괴하면서 ‘주의’ 경보가 발동됐습니다. 직원들은 긴급 대응에 나섰지요. 일부 공장의 전기를 급히 끊고, 방송사엔 절전 협조 자막을 요청했습니다. 전기를 무한정 공급할 수 없기에 이런 비상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현재 원자력·화력·수력 등 전국의 327개 발전소가 공급할 수 있는 전기는 총 7800만㎾입니다. 소비가 이를 초과하면 발전소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사태를 빚게 되지요.

 이날 ‘주의’ 경보가 울린 건 냉방용 전기 사용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입니다. 올 8월 서울에선 열대야가 14일 연속으로 나타나 최장기 기록을 세웠어요.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했지요. 이 때문에 선풍기만 틀고 살던 가정이 에어컨을 장만했고, 상점과 회사·공장도 냉방하는 데 전기를 많이 써야 했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전기 소비의 증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에요. 지식경제부가 조사했더니 지난 10년간 냉방용 전기 수요는 2001년 860만㎾에서 지난해 1532만㎾로 1.8배가 됐습니다. 여름철 전기 사용이 그만큼 증가한 겁니다. 전력당국은 소비가 이리 빨리 늘 줄은 미처 몰랐다고 발뺌합니다. 한마디로 ‘전기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이죠.

 그렇다면 공급은 어떨까요. 사실 발전소를 더 지으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됩니다. 그런데 이게 간단치 않습니다. 원자력발전소 하나 짓는 데 설계·건설까지 보통 10년이 걸립니다. 따라서 10년 전부터 전기 수요가 얼마나 늘지 적절히 예측해 발전소 건설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수요 예상에 실패했으니 공급을 늘리는 데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현재 전력난 이면엔 이러한 ‘수급(需給) 불균형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전문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합니다. 당시엔 친환경 정책이 대세였는데, 전력에서도 발전소 공급을 늘리기보단 전기 수요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수요를 줄이기 위해선 요금을 올리면 됩니다. 비싸면 덜 쓰니까요. 정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요금 인상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물가당국이 서민·기업 등의 반발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수급 원리’로 풀어야 할 전기 문제에 ‘정치 논리’가 끼어든 것이죠. 실제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보면 한국은 2003~2010년까지 13% 올랐습니다. 미국(33%)·일본(26%)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보다 크게 낮습니다. 경제가 많이 성장하면 전기도 더 쓰게 마련이죠. 그러나 한국의 성장 속도가 선진국보다 빠른데도 전기료는 낮게 책정된 것입니다. 또한 지자체·지역민이 위험하다며 발전소 건설에 반대한 것도 공급 차질을 부추겼습니다. 이런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빚어진 공급 부족분이 올해에만 450만㎾입니다.

 이러한 상처가 곪다가 결국 한계에 이르러 터져버린 게 지난해 9월 15일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었습니다. 국민은 놀랐고 정부는 다급해졌습니다. 최악의 무더위가 휩쓴 올해에도 예비전력은 여러 번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원전을 지을 수도 없고, 경제가 어려운데 낮은 요금을 단숨에 정상화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요 관리’ 강화입니다. 쉽게 말해 ‘절전’을 더 하라는 겁니다. 지경부는 최근 삼성전기·포스코·현대차 등 기업체 임원을 불러놓고 절전 이벤트를 펼쳤습니다. 일반 대중의 절전도 당부했습니다.

정부와 전문가는 2014년이 되면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울산의 신고리 4호기 원전과 인천의 영흥 6호기 화력발전소 등 총 1016만㎾의 공급이 보충된다는 겁니다. 그때까진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절전이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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