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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길 칼럼

안중근 뮤지컬이 일본 무대 오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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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수길
주필

어떻든 또다시 실마리를 잡아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영원히 등지고 살 수는 없고, 한·중·일 3국은 동아시아 미래를 생각할 때 결코 가벼이 처신할 수 없다. 한·일 관계는 과거부터 긴장과 화해를 반복해 왔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다.

 이번 한·일 갈등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최소한 새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정부 차원에서 어떤 계기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양국 정치권은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민간이 큰 역할을 해야 하고 나서야 한다. 양국 시민사회 모두가 정부보다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도 국가 권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이번 갈등을 놓고 대규모 시민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영토와 과거사 문제는 외교·학술 영역에서 꾸준히 다루고 경제·문화 등에서의 교류는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

 102년 전 오늘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가 주권을 빼앗겼다. 그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한 단계 더 올랐다. 이로써 한·중·일 3국의 신용등급은 모두 같아졌다. 동아시아 역사상 처음(!)이다.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지만 고대로부터 평가했다 해도 역사상 처음임엔 틀림없다. 그게 갈등 요인이기도 하지만 한 단계 더 높은 협력의 발판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같아진 한·중·일 3국의 신용등급은 세계 으뜸급이다. 최상급으로부터 네 번째 그룹에 함께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3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비중이거니와 그 역동성 역시 상위급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동아시아 3국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좋은 환경의 이웃 나라와 먼저 협력하지 않고서야 블록화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어떻게 달리 번영을 찾고 세계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까.

 경제만이 아니다. 멀리 두루두루 살필 것도 없이, 필자의 주변만 한번 둘러보아도 한·일 두 나라 관계는 그야말로 이웃이다.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뮤지컬 시상식 뮤지컬어워즈의 2010년 대상 작품은 ‘영웅’이었다. 극단 에이콤이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10월 26일 초연한 이 작품은 2011년 8월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도 올려졌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초청으로 뮤지컬을 감상한 각국 유엔 대사들은 찬사를 보냈다. 연출가 윤호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 영웅이듯 안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도 일본 시각에서 보면 영웅이다. 그런 해석이 각국 대사들의 공감을 끌어냄으로써 안 의사가 옥중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메시지를 뮤지컬에 담아 전했다.”

 ‘영웅’이 한·일 수교 50주년인 2015년 일본 공연을 일본 측 기획사와 협의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일보에 펜화를 연재하는 김영택 화백은 그간 한국의 문화재뿐 아니라 세계의 문화재를 그렸다. 일본의 오사카 성, 금각사, 헤이안 신궁 등 국보급 문화재 14점도 그렸다. 이번에 귀임하는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는 김 화백 펜화의 열렬한 팬이다. 도쿄 긴자의 미스코시 백화점에서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도 했었는데, 계획대로 되면 좋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 신화통신과 함께 2006년부터 매년 ‘한·중·일 30인회’를 공동 주최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을 차례로 돌며 정계·재계·학계·문화계 지도자 30명이 모여 상생과 협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지적·미디어 연대다. 그간 한·중·일 3국 정상의 연례 회담,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3국 간 외화 융통 확대 등을 제안했고, 실현됐다.

 이 같은 크고 작은 교류는 더욱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한다. 한 사회 안에서도 그러해야 하듯 양국 관계에서도 극우나 극좌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 성숙한 시민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문화 교류다. 외교협상이나 자유무역협정보다 훨씬 손쉽게 서로 다가갈 수 있는 분야의 교류를 민간이 앞서서 열어갈 수 있다.

 지금은 때가 아니겠지만 멀지 않은 적절한 시점에 한국 지상파 TV에서 일본 콘텐트를 방영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것이 어떨까. 이번 갈등을 계기로 오히려 문화 교류만큼은 더 가까워지고 국민 간 이해도 더 깊어지도록. 해서 ‘영웅’이 일본 무대에도 오르고, 곧 제작에 들어가는 위안부 영화도 일본에서 상영하도록.

 오늘은 퇴근길에 이자카야에 들러 사케 한잔 해야겠다. 일본 지인들을 생각하며.

 자고 일어나도 독도는 사라지지 않고 과거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김수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