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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 칼럼

국민에 빚 권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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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뭐 이런 정부가 있나 싶다. 빚을 더 얻어줄 테니 부동산 경기를 살리라고 국민 등을 떼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대상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얼마 전 발표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DTI란 소득에 비례해 금융기관 대출을 억제하는 제도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과도한 빚을 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 달부터는 ‘현재 소득’이 아닌 ‘10년 뒤 예상소득’을 잣대로 삼겠다고 한다. 억지로 소득을 늘려줄 테니 은행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는 얘기다. 결정적인 모순은 눈덩이 가계부채가 앞으로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빚을 권하는 뻔뻔함이다.

 과거에는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은행 창구는 늘 넘쳐났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게 유리했다. 집값 오름폭이 대출이자와는 비교가 안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전세금이 집값의 70%에 육박해도 집을 사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는 뜻이다. 한여름 부동산 시장에 여전히 냉기가 도는 이유다.

 얼어붙은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겠다며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DTI 완화다. 20~30대 무주택 직장인과 은퇴생활자들에게 은행 대출을 더 받게 해준다는 것이 골자다. 보통 사람들의 빚에 의존해 부동산 시장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도다. 40세 미만 직장인들에게 ‘10년 뒤 예상소득’을 적용한다는 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일까. 요즘같이 고용이 불안한 현실에서 10년 뒤 소득을 예측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10년 뒤 백수가 될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고정수입이 없는 은퇴생활자들에게 은행 이자라는 고정 지출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도 갸륵하다. 자식 공부시키고 결혼 밑천까지 대준 뒤 남은 쥐꼬리 노후자금으로 은행들을 살찌우겠다는 것인가. 집값이 더 떨어지는 날에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은행도 골치 아파진다. 부동산 대출이 부실화되면 자연 은행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50대 이상의 가계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어 왔다. 지난해 말 기준 424조원으로 2003년 말보다 170%나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90%)의 거의 두 배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었다 해도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살 것인지 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그들은 책임을 다 정부로 돌릴 것이다. 금융 당국은 이미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 초과분을 갚지 않아도 만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부작용이 커지자 금융규제를 풀자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장을 살리려는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양도세 중과와 같은 ‘거래 규제’를 먼저 풀고, 그 다음에 용적률 등 ‘건설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규제 완화는 맨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규제의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의 김석동 위원장 생각도 이렇다. 그는 이번 DTI 완화 조치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DTI 규제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집이 춥다고 기둥을 뽑아 불을 땔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담당 장관이 이렇게 반대했는데도 어떻게 정책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참 요지경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