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아름답다고?

중앙선데이

입력 2012.08.2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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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30면

중학교 때까지 수학을 곧잘 했지만 상업고교에 진학해 취업준비를 하면서 수학과 멀어졌다. 미·적분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학교를 졸업했다. 은행생활을 하며 다닌 대학에서도 전공과 상관없었던 수학은 그저 먼 과목이었다.그런데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수학과 외나무다리에서 딱 마주치게 됐다. 공직생활 7년째에 가게 된 미국유학, 그 중요한 첫 학기에 경제수학을 필수과목으로 들어야만 했다. 미·적분도 제대로 이해 못했던 내게 대학원 수학을 듣는다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첫 수학시간, 사람 좋아 보이는 그러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교수가 들어와 과목을 소개하고는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과목 소개의 끝말로 남겼다.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beauty of the mathematics world!).” 말은 멋있게 들렸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름다움이라니! 수학에 무슨 아름다움이.

그리고는 훌쩍 10년도 더 지나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히로나카는 나름 연구대상인 학자다.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유년학교 입시에서 낙방했고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었다. 교토대 3학년 때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로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하고 ‘특이점 해소의 정리’라는 난제를 풀어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는 첫 수학시간에 들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 히로나카는 하버드대와 MIT 교수들 앞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표하면서 여러 찬사를 듣는데 수학자에게 ‘아름답다(beautiful)’는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고 했다.

수학의 간결성과 완결성, 아름다움을 이해한다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경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논문을 쓸 때가 생각났다. 기존 문헌에서 찾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제로 정하고 연구에 빠져들었을 때였다. 꿀독에 빠진 벌처럼 미친 듯이 파고들었던 시절. 나름 길을 찾고 답을 얻었을 때, 새로운 이론을 정립했을 때의 성취감과 희열. 그러고 보니 ‘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경지를 넘어서면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이나 심리학, 경제학 같은 다른 학문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의 지평을 더 넓혀보니 비단 학문뿐 아니라 일에서도 ‘그 세계의 아름다움(beauty of the world)’을 느끼는 경지가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학시절 오로지 성적 잘 받는 것이 목표였던 두 학기를 보내고야 시험공부가 아닌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더라도, 학위를 마치는 기간이 길어져 나중 직장에 복귀해 손해를 보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3년 넘게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그 노력의 가장 소중한 보상은 학위라는 훈장이 아니라 학문하는 ‘참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참 즐거움’이라는 실(絲)의 끝 어딘가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지와 조금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그 노력의 끝자락에 어떤 보상이 올지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없이 오랜 기간 자신을 바치는 노력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히로나카는 하버드대 수학 천재들 틈에서 ‘나는 바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쉼 없는 ‘노력’과 끝까지 하는 ‘끈기’로 그 경지에 도달했다.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노력과 열정이 위대함을 낳는 매직넘버라고 했다. 우리 주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누구든 그런 경지에 이르면 ‘아답다’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그때 비로소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아름다운 □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는 각자가 채울 몫이다.

김동연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재정건전화를 주도했다.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행정·입법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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