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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뇌 vs 뇌 지도...뇌 수수께끼 풀기 경쟁 뜨겁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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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5면

사람의 뇌에서 정보처리는 신경세포(뉴런)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게가 평균 1350g인 뇌 안에는 1000억 개의 뉴런이 들어 있다. 각각의 뉴런은 다른 수천 개의 뉴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시냅스(Synapse)로 접속된다. 뉴런 사이의 연결은 100조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초창기에 뇌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과학자들은 뇌가 손상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동의 변화를 분석해 구조와 기능의 관계를 나타내는 지도를 작성했다. 뇌 지도를 작성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19세기 초에 출현한 골상학(Phrenology)이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 생김새가 상응하는 뇌 조직의 발달 정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고, 죄수 또는 정신병자의 두개골을 분석해 마음의 기능에 따라 뼈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를 작성했다.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있다' ③ 뇌연구 프로젝트

20세기 후반부터는 의학 영상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뇌 지도 제작이 한결 수월해졌다.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 뇌의 내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음의 활동과 관련된 뇌의 영상을 찾아내 지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뇌 영상 기술로는 세포 수준까지 연결 상태를 파악해 지도를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이런 문제는 2005년 출현한 광유전학(Optogenetics)에 의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광학과 유전학이 융합한 광유전학은 빛에 반응하는 유전자와 단백질 분자를 활용해 특정 행동과 관련된 뉴런에 불이 켜지도록 함으로써 뉴런의 연결 상태를 파악한다. 광유전학은 초파리나 생쥐의 뇌에서 신경세포 집단과 행동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신경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특정 행동을 제어하는 관련 신경세포 회로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자못 크다.그러나 광유전학으로 뇌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적지 않다. 따라서 뇌 전체를 실제로 본뜨는 작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나는 뇌를 분자 수준까지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해 인공 뇌를 만드는 것이다. 역설계는 제품을 분해해 그 구조를 분석한 뒤 그 설계를 역으로 탐지해 모방하는 기술을 뜻한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뇌 안의 모든 뉴런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블루 진 수퍼컴퓨터 [위키피디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디지털 뇌' 제작
뇌를 역설계해 인공 뇌를 만드는 기법으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Simulation)이 활용된다. 시뮬레이션이란 실제로 실행하기 어려운 실험을 간단히 행하는 모의실험을 의미한다. 컴퓨터로 모의실험해 실물처럼 모방하는 것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 이른다. 뇌 전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나타내는 디지털 뇌(digital brain)를 얻게 된다.
디지털 뇌의 성공 여부는 컴퓨터의 성능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컴퓨터의 속도가 빠를수록 시뮬레이션의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 뇌 연구에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는 블루 진(Blue Gene)이다. 미국 IBM의 제품인 블루 진은 세계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수퍼컴퓨터의 하나다. 1초에 500조 번의 속도로 연산을 할 정도다.
블루 진을 사용해 뇌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도전하는 대표적 인물은 스위스의 헨리 마크램과 미국의 다르멘드라 모다이다.

헨리 마크램은 2005년 5월 스위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에 착수했다. 블루 진 컴퓨터 중에서 프로세서(처리장치)가 1만6000개에 불과한 것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쥐의 뇌에서 피질 원주(Cortical column)를 본뜨는 데 성공했다. 신피질의 최소 기능 단위인 피질 원주는 지름 0.5mm, 높이 1.5mm의 원기둥처럼 생긴 뇌 조직이다. 피질 원주가 모여 대뇌피질이 형성된다.

쥐의 경우 피질 원주에는 1만 개의 뉴런이 들어 있고 이들이 다른 뉴런과 접속된 연결은 1억 개다. 쥐의 뇌는 이러한 피질 원주 수백만 개로 구성되어 있다.
마크램이 쥐의 피질 원주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한 것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뇌의 특정 구조를 뉴런 단위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테드(TED) 콘퍼런스에서 마크램은 “사람 뇌를 10년 안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인공 뇌는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말도 하고 지능도 가지며 행동할 것이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수퍼컴퓨터의 성능이 오늘날보다 2만 배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수퍼컴퓨터의 기억 용량은 오늘날 인터넷의 전체 규모보다 500배나 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돈이다. 마크램은 디지털 뇌를 만드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달러의 문제다. 사회가 10년 안에 원하면 10년 안에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추진 중인 인간 뇌 프로젝트(HBP·Human Brain Project)는 과학계의 지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마크램은 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6월호에 HBP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HBP는 사람 두개골 안의 뉴런 890억 개와 이들의 100조 개 연결을 컴퓨터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뇌의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구축하면 신경과학, 의학, 컴퓨터 기술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0년까지 디지털 뇌를 만들 계획인 HBP에는 전 세계의 130개 대학이 참여한다. HBP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연합이 10년 동안 10억 유로 (14억 달러)를 지원하는 연구 과제 공모에 신청을 해둔 상태다. 2013년 2월 선정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HBP가 낙점을 받을지 귀추가 궁금하다.

마크램의 경쟁자인 미국의 다르멘드라 모다는 블루 진 중에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기종인 던(Dawn)을 사용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던은 프로세서 14만7456개, 기억용량 15만 기가바이트로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보다 약 10만 배 성능이 강력하다. 2006년 생쥐 뇌의 40%를, 2007년 쥐 뇌를 100% 시뮬레이션했다. 2009년 모다는 세계적인 업적을 성취했다. 사람 대뇌피질의 1%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뉴런 16억 개와 9조 개의 연결이 포함된 피질이었다.2011년 8월 시냅스(SyNAPSE) 연구 성과도 발표했다. 시냅스 프로젝트는 사람 뇌를 본뜬 컴퓨터 칩을 만드는 것이다. 모다는 256개의 뉴런이 수십만 개의 시냅스를 통해 연결된 컴퓨터 칩을 개발해 사람 뇌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람 뇌 전체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본뜨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부각됐다. 컴퓨터의 전력 소모와 발열이다. 던 컴퓨터의 경우 100만W(와트)를 소모하고 6675t의 공기조절장치(에어컨)가 필요할 정도의 열을 발생시킨다.

2011년 3월 미국 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가 펴낸 '미래의 물리학(Physics of the Future)'에 따르면 뇌 전체의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수퍼컴퓨터는 10억W의 전력을 소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핵발전소 한 개의 전체 발전량과 맞먹는 규모다. 수퍼컴퓨터 한 대가 도시 한 개 전체에 전등을 켤 수 있는 전력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카쿠는 “이 컴퓨터를 냉각시키려면 강 한 개의 물이 몽땅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사람 뇌는 20W밖에 사용하지 않고, 열도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수퍼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덧붙인다.

뇌 1200개로 그린 지도 곧 공개
뇌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는 두 번째 방법은 모든 뉴런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는 것이다. 2005년 뉴런의 연결망을 지도로 표현하는 새로운 분야가 출현했다. 뇌신경 연결지도는 커넥텀(Connectome)이라 명명하고, 커넥텀을 작성하고 분석하는 분야는 커넥터믹스(Connectomics)라 불린다. 2009년 7월 인간 커넥템 프로젝트(HCP)가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됐다. 2010년 9월 미국 국립위생연구소(NIH)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워싱턴대에 3000만 달러, 하버드대에 850만 달러를 후원했다.

커넥터믹스는 재미 과학자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67년생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대 공대 교수로 있으며 2008년 호암상을 받기도 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 과학에도 조예가 깊어 커넥터믹스의 핵심 인물이 된 것이다. 2010년 9월 TED 콘퍼런스에서 나는 나의 커넥텀이다(I am my connectome)는 제목의 연설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2010년 뉴욕타임스 12월 27일자에 따르면 HCP가 넘어야 할 고비가 만만치 않다. 하버드대 분자생물학자인 제프 리츠트먼은 뉴런이 1억 개인 생쥐 뇌의 커넥텀을 작성하는 수준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람 뇌의 1000억 개 뉴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먼저 생쥐를 마취시키고 뇌를 여러 개 조각으로 썰어 낸 다음 미세한 조각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마치 스파게티 국수 가락처럼 얽혀 있는 뉴런의 연결 상태를 상세한 지도로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쥐의 커넥텀을 저장하는 데 1페타(10의 15승)바이트의 컴퓨터 기억용량이 필요한 것으로 밝혀져 사람의 커넥텀에는 100만 페타바이트라는 가공할 저장용량이 소요될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여러 기술적 문제로 사람의 커넥텀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어쨌거나 HCP가 사람의 뇌 1200개를 대상으로 그린 지도의 성과가 올해 후반부터 공개될 것으로 알려져 지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승현준 박사(사진)는 지난 2월 펴낸 『커넥텀』이라는 저서에서 “커넥터믹스는 게노믹스(유전체학)가 생물학에 중요한 만큼 신경과학에 중요할 것”이며 커넥텀이 완성되면 “인간의 기억이 뉴런 사이의 연결망 안에 저장된다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P와 HCP가 모두 성공해 뇌의 수수께끼가 밝혀지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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