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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국내 시장 10%만 잠식해도 ‘대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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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2면

기자가 2005년 현대자동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처음 갔을 때다. 검지가 기자의 엄지만 한 미국 근로자들을 보고 품질이 살짝 걱정됐다. 안 그래도 미 현지 생산 차량의 잔고장이 오명을 떨칠 때다. 더구나 앨라배마는 농업 지대로 첨단 공장은 현대차가 처음이었다. 현대차 울산공장장 출신의 앨라배마 공장장은 “자동차의 마지막 품질은 작업자 손에서 나온다. 아무래도 (미국이) 한국 근로자보다 섬세하지 못한 점을 극복하려고 90% 이상 조립라인을 자동화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파사트 시승기

독일 폴크스바겐은 일찍이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를 꿈꿔왔다. 드디어 올해 상반기 세계 2위로 도요타를 바짝 턱밑까지 따라왔다. 1960년대부터 그들의 전략은 수요 있는 곳에 공장을 짓는 현지생산이다. 중형차의 미국 생산은 지난해 9월이 처음이다. 주력 파사트(Passat, 사진)를 테네시 공장에서 생산한 것이다. 멕시코에서 30여 년간 소형차 제타·비틀을 생산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미 공장에 접목했다.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기능에 치중한 간결한 디자인을 택했다.모든 스위치나 패널은 멋을 부리기보다 기능 위주다. 치장이라곤 우드 그레인이 전부다. 큼직한 손가락의 미국 근로자들이 손쉽게 조립할 수 있게 했다. 그렇다고 편의장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고급차에 달린 웬만한 기능은 다 넣었다.

2012년형 파사트가 이처럼 새 단장을 하고 28일 국내 시판된다. 이미 수년 전 국내에 들어온 기존 모델은 독일산인 데 비해 이번 신형은 미국산이다. 파사트는 출시 전부터 화제였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국내영업 간부들에게 ‘파사트 경계령’을 내렸다. 그랜저는 올해 1∼7월 5만3480대가 팔렸다. 월 평균 7500대 수준이다. 파사트가 그랜저 시장의 10%만 먹어도 대박이라는 중론이다. 판매망이 현대차의 30분의 1에 불과하니 말이다.

신형 파사트는 우선 외관부터 크게 바뀌었다. 폴크스바겐의 대형차 페이톤 풍이다. 긴 직선을 이용한 간결함이 돋보인다. 단순해서 아름답다고 할까. 요즘 현대차에서 자주 엿보이는 면과 선의 복잡한 교차는 찾아보기 어렵다.실내공간은 꽤 커졌다. 길이가 기존 모델보다 10㎝가량 늘었다. 뒷좌석이 넓어져 그랜저에 비해 뒤지지 않는 공간이다. 트렁크 공간은 어마어마하다.
인테리어는 간결하다. 스위치 모양만 보면 한눈에 어떤 기능인지 알 수 있다. 편의장치만 놓고 보면 그랜저의 압승이다. 우선 뒷유리 햇빛가리개, 통풍시트, 열선핸들,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이 없다. 이 기능이 없다고 불편하진 않다. 대신 키만 갖고 있으면 도어의 열고 닫음이 자동으로 되는 키리스 엔트리 시스템을 보강했다.

가장 큰 불만은 밤거리 넓은 시야를 보장하는 백색 제논 램프 헤드라이트 대신 좀 싸 보이는 할로겐 램프를 단 것이다. 이는 “한·미 자동차 법규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회사 측 설명이다. 미국산이라 제논 램프가 빠졌다는 것이다. 또 뒷좌석 에어컨 송풍구가 없는 것도 아쉽다. 미국에선 혼자 타는 차라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엄연한 가족용 중형차다. 화려한 실내와 이런저런 편의장치를 중시한다면 국산 동급 모델이 정답이다.

엔진은 2L 디젤이다. 출력 140마력에 토크 32.6㎏·m을 낸다. 여기에 빠른 가속과 연비를 향상시켜 주는 더블클러치 자동 6단(DSG)을 달았다. 폴크스바겐의 소형 해치백 골프에 들어가는 것과 똑같다. 단 기존 DSG의 단점인 저속·오르막길에서의 변속 충격을 제대로 개선했다. 변속기와 궁합이 좋아서인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초반 가속 성능이 뛰어나다. 디젤의 강력한 저속 토크가 느껴진다. 중고속인 시속 80∼100㎞에서 추월하기 위해 엑셀을 꾹 밟으면 조금은 답답하다. 부족한 마력 때문이다. 요즘 2L 디젤 고급형은 170마력 이상을 낸다. 실내 정숙성은 완벽할 정도다.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주행성능을 그랜저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 장점은 삼위일체의 조화다. 도로에 들러붙는 듯한 숙성된 서스펜션, 디젤 엔진과 DSG변속기의 조화, 그리고 고속에서의 안정감이다. 좋은 와인이 타닌의 쓴맛과 신맛, 그리고 적절한 단맛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파사트는 편의장치에서 뒤진 것을 기본기로 만회하려 했다.
가격은 기존 모델보다 10%(약 400만원) 정도 내려 4050만원이다. 10월부터 시판될 2.5L 가솔린 모델은 170마력에 토크가 24.5㎏·m다. 국산차뿐 아니라 수입 경쟁모델에 뒤진다. 그래서 디젤을 권유하는 전문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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