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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3’ 같은 신제품 판매에도 영향 미칠 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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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04면

24일 삼성-애플 특허 소송에 대한 배심원들의 평결이 끝난 직후, 애플 측 변호사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배심원단은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의 패권을 좌우할 ‘세기의 특허소송’에서 애플이 기선을 잡았다. 향후 글로벌 IT 시장에 미칠 파장이 깊고 넓을 듯하다. 글로벌 신성장산업으로 떠오른 스마트폰 시장의 중심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애플은 이 여세를 몰아 삼성 등 구글 안드로이드폰 진영을 드세게 압박할 분위기다. 구글·노키아 등 내로라하는 모바일 IT 업체들도 반(反)애플 특허전선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고래 싸움’은 이제부터다. 이들과 더불어 살아온 부품업체들은 ‘새우등 터질까’ 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침해 평결은 세계 IT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점검해 봤다.

세기의 특허소송, 파장과 전망

24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새너제이의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 5층 1호 법정. 루시 고(43) 판사는 ‘평결 양식’을 법원 서기에게 넘겨 발표하게 했다. 법원 서기가 삼성전자 휴대기기 제품 대부분이 애플의 특허 6건을 침해했다고 읽어 나갔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앞면 테두리 ▶아이콘(그림명령메뉴) ▶앞면 검은색 처리 등에서 애플 디자인을 베꼈다는 것이다.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축소하는 ‘멀티 터치 줌’과 화면을 맨 아래로 내리면 다시 튕겨지는 ‘바운스 백’ 등도 특허 침해로 결론났다. 배심원단은 처음엔 삼성전자가 애플에 10억5185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고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일부 오류를 지적해 배상액은 10억4934만 달러로 약간 낮춰졌다. 당초 애플이 주장한 25억 달러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삼성이 당초 예상한 5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글로벌 특허소송 사상 몇 번째로 많은 배상액으로 꼽힌다.

이번 평결로 삼성전자는 향후 글로벌 모바일 비즈니스에서 타격이 예상된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17%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정상적 영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는 애플과의 특허소송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소송 대상에서 빠진 ‘갤럭시S3’ 등 신제품에 대한 추가 판매금지 조치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갤럭시S3도 예전 삼성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모방의 산물이라고 애플은 주장해 왔다. 애플은 다음 달 스마트폰 신제품 ‘아이폰5’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에 본격 상륙한 삼성 갤럭시S3와 맞대결할 제품이다.

그래서 애플의 특허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IT 정보사이트인 실리콘밸리닷컴에 따르면 애플 측 마이클 제이컵스 변호사가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에게 7일 이내에 미국 내에서 삼성전자 제품의 판매를 금지시켜 달라는 요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판사는 이미 삼성의 넥서스폰과 갤럭시10.1 탭에 대해 예비 판매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애플은 또 이번 평결을 유럽과 호주, 아시아 각국의 소송에서도 최대한 활용할 태세다. 이날 애플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모토로라모빌리티와의 특허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안드로이드폰 진영과의 전면전에 강력한 승전보를 두 건이나 얻어냈다.

이번 배심원 평결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은 어떻게 치달을까. 배심원 평결은 ‘애플 완승, 삼성 완패’로 나왔지만 재판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배심원단이 평의를 거쳐 평결을 내렸을 뿐 실제 판결은 재판장 고 판사가 이를 검토한 뒤 이르면 한 달 이내에 내린다. 재판장은 대개 평결과 비슷한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재판장이 드물게 이를 뒤집거나 변경하기도 한다. 소송 당사자가 ‘RJMOL(renewed judgment as a matter of law)’이라는 소송행위를 통해 ‘평결에도 불구하고(라틴어 non obstante veredicto)’ 이와 다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할 수 있어서다. 얼마 전 IT 특허소송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 스마트폰 ‘블랙베리’의 제조사인 리서치인모션은 7월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평결을 받았으나 한 달 뒤 재판장이 이를 뒤집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최종판결이 나와도 항소할 수 있다. 실제로 배심원 평결이 예상을 웃도는 수준이라 삼성전자는 1심 판결 이후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평결이 나온 직후 “미 소비자들에게 차질 없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평결에 대한 적극적인 소명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상급심 절차를 통해 싸우겠다는 뜻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서 총공세 땐 애플도 곤란
삼성과 애플의 극적 타결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글로벌 IT시장의 특허소송에서 어느 한쪽의 승리보다 크로스 라이선스(Cross license·상호교차사용) 합의와 로열티 일부 지급 등으로 타결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노벨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이성수 공동대표 이야기다. “서로 엇비슷한 특허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 대법원까지 가기 쉽다. 특히 삼성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이 보유한 통신 특허가 총동원되면 애플도 골치 아플 것이다. 당분간 힘겨루기를 하다가 언더테이블에서 적절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IT 기업들에 대한 국제특허 분쟁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특허괴물’로 불리는 특허소송 전문회사(NPE)들이 한국 기업들을 ‘먹잇감’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특허괴물은 원천특허를 사들인 뒤 이를 쓰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사용료를 받아내는 특허전문회사(NPE)를 말한다. 한국 기업들이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패소에 따른 막대한 배상금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도 있어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원희 수석연구원은 “최근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에 대한 각국의 견제가 심해졌다. 과거에는 반덤핑 관세 부과 등이 견제 수단이었다면 최근에는 IT 기업 등에 대한 특허 공격이 거세졌다”고 말했다. 국내 첫 특허펀드회사인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의 김홍일 대표는 “중견·중소기업 중에 특허 문제로 수출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른다”고 전했다. 그는 “돈 조금 더 벌겠다고 무리하게 수출하다가 국제특허소송에 휘말리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 간의 국제특허소송은 급증 추세다.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따르면 국제특허소송 건수는 2009년 154건에서 지난해 278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노벨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이성수 공동대표는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늘 크고 작은 특허 클레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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