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통’ 개혁 준비하는 중국 … 한국기업 대비책은 R&D

중앙일보

입력 2012.08.24 03:12

업데이트 2012.08.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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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20년, 돌아보면 중국의 존재는 우리 경제에 행운이었다. 1992년 수교와 함께 많은 단순 임가공 공장이 중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겼고, 우리는 큰 충격 없이 산업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위기극복의 힘을 중국에서 찾았다. 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이 향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축복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한 해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켜오던 대중국 수출은 올 상반기 마이너스로 주저앉았고, 김영환씨 고문사건에서 보듯 양국 간 신뢰관계는 쉽게 금이 간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중국에 코 꿰여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많은 투자 기업들이 중국의 기업환경을 이기지 못해 보따리를 싸고 있다. 덩치가 커진 중국 기업은 우리가 대응하기에 버거운 상대가 됐다. 정치적으로도 중국은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다.

박한진 KOTRA 중국실 부장은 “중국의 변화를 알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30여 년간, 10%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며 숨가쁘게 달려왔던 중국 경제는 이제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며 숨을 헐떡인다. 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인민들의 불만은 통제의 균열을 비집고 터져 나온다. 경찰차가 뒤집어지고, 인터넷에서는 공산당을 비난하는 글이 난무한다.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충돌은 향후 10년 ‘시진핑 시대’가 직면해야 할 거대한 도전의 서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진핑 체제는 이 같은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언제나 그랬듯, 경제구조 개편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는 ‘3통(三統)’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생산의 국내 통합’이다. 중국은 그동안 제품 생산에 필요한 고기술 핵심 부품을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조달하는 산업구조를 보여왔다. 그러나 기술 수준이 높아진 지금 중국 기업은 부품도 국내에서 조달하겠다고 나선다. 아시아 주변국에 흩어져 있는 부품 제조 공정을 중국 국내로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생산과 시장의 통합이다. 중국 기업은 그동안 생산은 중국에서 하고,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내수 확대를 통해 소비도 국내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수출과 투자에 의존한 성장 패턴을 소비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좐볜(轉變)’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패턴의 전환’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셋째는 제조와 금융의 통합 발전이다. 그동안 중국 금융업은 제조업 발전의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돼왔다. 정부가 금리를 틀어쥐고 외부에는 보호장벽을 높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경쟁력 높이기에 나섰다. 총리가 나서서 국유은행의 독점을 철폐하겠다는 공언을 했고, 2012년에 들어와서는 부분적 금리 자유화 조치도 단행했다. 한편으로는 금융업 대외 개방 폭을 넓히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변화들이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생산의 국내 통합’은 우리의 대중국 수출에 치명적이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약 70%가 부품과 반제품 등의 중간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산 공정이 중국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곧 한국 기업이 중국에 팔 중간재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한중 무역 패턴을 다시 뜯어보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변경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이 살 길은 기술개발뿐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한 발 앞선 기술로 생산 과정을 리드해야 한다”며 “중국이 벌크선을 만들면 우리는 드릴십으로 대응하고, 중국이 세계 PC 생산국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갈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옷을 많이 만든다면 우리는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를 R&D센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박사는 “중간재 및 소재 분야 연구개발(R&D)지원을 늘리고, 이 분야 중견기업들의 시장개척을 도와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일본의 부품업체를 사들여서라도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력이 없다면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가 파고들 중국 시장은 없다는 얘기다.

‘생산과 시장의 통합’은 한국 기업의 대중국 전략에 일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의 중국 비즈니스는 제조업 위주였다. 중국에서 얼마나 싸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이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다. 중국 소비자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중국 소비자가 한국 업계의 판도를 바꿀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곽복선 경성대 교수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을 만들고, 중국에 진출한 투자업체들도 제품 공급선을 해외시장에서 내수시장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게 바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 시대의 생존법”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얼마나 싸게 생산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조와 금융의 통합 발전’은 우리에게도 기회다. 생산 교류, 상품 교류에 그쳤던 한·중 경제협력의 범위가 자본시장 교류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 돈으로 중국 돈을 벌 수 있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서봉교 동덕여대 교수는 “해외로 넘쳐나고 있는 ‘차이나 머니(China money)’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위안화 국제화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레드백 이코노미(Redback economy, 위안화 경제)’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응할지가 우리 금융권에 던져진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미 중국 자본시장과의 교류는 시작됐다. 패션업체인 이랜드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륙 금융시장에서 5억 위안 규모의 위안화 채권 발행에 성공했고, CJ와 롯데쇼핑은 홍콩에서 딤섬본드(위안화 표시 채권)발행으로 위안화를 마련했다. 이랜드 채권 발행 프로젝트를 주관했던 하나대투의 조강호 IB본부장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사이에서 성공 사례가 나온다는 것은 곧 자본시장 분야에서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현지 금융업체와의 신뢰 구축, 자본시장 운영에 대한 지식 축적, 중국 금융인재 양성 등의 ‘중국 금융 비즈니스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 현대증권 상하이 지사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중국 비즈니스를 시작한 그는 “이제야 중국 금융시장을 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중국에 진출했던 제1세대 중국 비즈니스맨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싸게 생산할 것인가’였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계기로 내수시장에 진출했던 제2세대 비즈니스맨들은 중국 유통망 구축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금 중국에 진출해 뛰고 있는 제3세대 비즈니스맨들은 이제 중국 자금을 어떻게 사내 자원으로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발전과 함께 가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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