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중심의 관청가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일본 외무성은 23일 하루 종일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한국 대사관 측이 일 외무성에 ‘노다 서한 반송’을 위해 연락을 취한 건 오전 9시쯤. 김기홍 정무과장은 일 외무성의 오노 게이이치(小野啓一) 북동아 과장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오노 과장은 좀처럼 전화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오노 과장과 전화가 연결된 것은 이날 오전 늦은 시간. “전달할 문건이 있으니 찾아가겠다”는 김 과장의 요청에 오노 과장은 “약속이 있어 안 되겠다”고 하다 나중에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서한를 반송하러 오는 것이면 만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심하던 주일 대사관 측이 일단 대사관 차량으로 외무성으로 향해 도착한 건 오후 3시40분. 이미 우익단체 차량 5~6대가 외무성 정문 앞에 자리 잡고 “비열한 한국은 물러가라” “한·일 우호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김 과장이 탄 차량은 외무성 정문 앞에서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아예 대문을 걸어 잠근 것이다. 이에 정문 옆 동문을 통한 진입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김 과장은 차량에서 나와 외무성 진입을 시도했지만 외무성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대로변 철책 안으로조차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는 노다 총리의 서한을 담은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일 외무성 직원은 단 한 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경비원 3~4명만이 계속 김 과장을 막아 섰다. 말 그대로 문전박대였다. 김 참사관이 외교관 신분증을 제시하며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경비원들은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통화를 했다. 잠시 후 “사전 약속 없이는 못 들어 간다고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본 경비원들은 김 과장이 다가오자 서둘러 철문을 닫고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외무성은 일본 기자들은 청사 내로 들여보냈지만 한국 취재진, 대사관 직원들은 일절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 섰다.
김 과장이 다시 전화로 오노 과장에게 방문한 사실을 알리며 재차 면담을 요청했지만 반응은 썰렁하기만 했다. 한 시간 동안 외무성 밖 인도에서 대기하던 김 과장은 결국 오후 4시40분쯤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김 과장은 “면담을 이런 식으로 거부하는 것은 외교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결례가 있을 수 있느냐”고 항의했지만 외무성 측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날 외무성 측은 방문자들에게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일본 취재진이냐 한국 취재진이냐”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등 감정적인 대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일본 외무성 출입기자는 “이미 오늘 이른 시간부터 한국의 서한 반송은 물론 한국 취재진도 원천봉쇄한다는 입장을 세웠다”고 귀띔했다. “한국이 총리의 서한를 반송하는 외교적 무례를 한 만큼 같은 수준으로 한국에 돌려주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성 부대신은 이날 우리 측의 노다 총리 서한 반송을 접수 거부한 뒤 기자회견에서 “총리 친서를 반송하는 건 애들 싸움보다 못한 이야기”라고 했다.
주일대사관 관계자는 “일본이야말로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대문까지 걸어 잠근 것”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결국 주일 대사관 측은 이날 저녁 등기우편을 통해 노다 서한을 반송했다. 일본 우편 제도상 등기우편은 반드시 수령하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