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향우’ 분위기 편승한 노다 “불퇴전”

중앙일보

입력 2012.08.24 02:16

업데이트 2012.08.2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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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명박 정부와 일본 민주당 정권 사이의 갈등이 거친 감정적 도발 국면으로 비화하고 있다. 23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항의 서한을 되돌려주기 위해 일본 외무성에 간 우리 외교관을 문전박대한 것은 외교사상 유례없는 신경질적 반응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과 발언(14일)에 대해 사죄를 요구한 노다 총리의 발언은 의도된 도발로 우리 정부는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 수뇌부 사이의 감정싸움은 한 번 확전(擴戰)되면 진화하기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물러나거나 타협 제스처를 먼저 취한 쪽이 자국 국민들의 지지를 한순간 잃기 때문이다. 현재 노다 총리의 지지율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10월 중순엔 총선이 예정돼 있다. 민주당 정권으로선 판세를 뒤집을 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의 국내정치가 (감정대립의) 큰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고, 일왕의 사과를 언급했다. 우리 정부 수반이 국내 영토를 시찰하는 것이나, 원론적 수준에서 침략전쟁에 대한 일왕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발언에 일본 정부는 ‘화끈하게’ 반응하고 있다.

 노다 총리는 개인 생각과 관계없이 민주당 정권을 위해 한국에 거칠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입장이다. 그가 ‘불퇴전(不退轉·신념을 갖고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음)’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일의 정치적 상황이 불을 붙게 하는 부분이 있다”며 “일본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우리도 임기 말인 상황이기 때문에 10~11월께 일본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양국 관계의 새 판을 짜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경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일본에선 영유권 문제에 강하게 대응할수록 정권 지지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제1야당인 자민당이 오는 29일 노다 총리에 대해 문책결의안(참의원)을 제출한다는 입장이어서 노다 총리의 강경대응을 부추기고 있다. 여러모로 노다 총리로선 당분간 영유권과 일왕을 이슈로 몰고가는 게 유리한 셈이다. 이 때문에 일본 민주당 정부 인사들의 표를 의식한 도발적 발언은 당분간 경쟁적으로 쏟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독도는 100% 주권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23일 “영토 수호는 한·일 관계보다 우선한다”는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단기적으로 한·일 외교관계의 경색을 각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일본 외무성이 반송하려는 노다 총리의 서한 접수를 거부하자 즉시 일본 우체국의 등기우편으로 우송한 것도 일종의 강경대응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탄력적인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외교 당국자는 “현재의 갈등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며 “흥분한 일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로 간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총선 이후 새 정권과 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원덕 국민대(정치학) 교수는 “양국이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지만 한·일 관계를 전면적으로 망가뜨리는 상황까지 전개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국내 정서를 잘 고려하되 추가로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진창수 센터장도 “다음 정부에서도 나름 냉각기가 있을 것이므로 서로 자제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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