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영희 칼럼

아시아 시대는 허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2012.08.24 00:29

업데이트 2012.08.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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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폴 베이로츠(1930~99)는 세계 경제사의 심각한 오류를 많이 바로잡은 경제사가다. 그는 서양의 동양 지배가 근대부터 시작됐다는 종래의 신화를 깨고 19세기까지도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해 냈다. 그에 따르면 1750년 전 세계 총생산(GNP)은 1550억 달러(1960년 달러 가치 기준)였고, 그 77%인 1200억 달러가 아시아의 몫이었다. 1860년에도 전 세계 총생산 2800억 달러의 거의 60%인 1650억 달러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가 차지했다. 1800년의 1인당 총생산은 중국 228달러, 영국과 프랑스가 150~200달러였다. 서양의 팽창 기간으로 알려진 1400~1800년대에 세계 경제는 여전히 아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안드레 프랑크, 『ReOrient』).

 21세기는 아시아 시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연구 결과를 보면 21세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에 빼앗겼던 패권을 다시 찾은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용들이 그 추진 세력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와 19세기 이래 서양 행세를 한 일본이 서둘러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 아시아 시대에 노란불이 켜졌다. 아시아 시대를 주도할 한·중·일이 영토와 과거사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여 어렵사리 맞은 아시아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이 아시아 시대를 주도할 능력이 있는가에 심각한 회의가 든다. 한·중·일 갈등의 원흉이 일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지배와 중국 침략의 욕된 과거를 정리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반도 통치의 끝자락을 놓지 않겠다는 파렴치다. 일본의 양식 있는 생각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위안부 문제도 방치돼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에 필요한 각성제의 성격을 가진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부산·대구 방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이 독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해서였다. 문제는 거기에 국내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친형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심각한 레임덕 현상을 만난 이 대통령에게는 일본 배려보다는 국내 정치의 국면전환이 더 급했다. 그래도 일본이 그의 독도 방문을 시비하는 것은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이 대통령이 여론의 갈채를 업고 내친김에 일본에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일본이 과잉대응하며 한·일 갈등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여론의 장으로 넘어갔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둥,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일왕이 일제 지배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둥의 말은 틀린 데는 없어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어떤 실익(實益)도 가져오지 않는 발언이다.

 일본에서 국왕은 정치에 초연하다. 그는 한국에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도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그는 ‘지존’이요 ‘성역’이다. 그에게 한국 대통령이 뜬금없이 종주먹을 휘둘렀다. 일본 여론이 훌렁 뒤집히고, 인기가 바닥을 헤매던 약체의 노다 내각이 그 분위기에 재빨리 편승했다. 연내에 총선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노다에게 이 대통령의 언행은 하늘이 내린 굵은 동아줄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분규도 위험 수준이다. 두 나라 시민과 정치인들이 댜오위다오 상륙 경쟁을 벌이고,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반일 과격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예전같이 여론의 민족주의적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한·중·일 갈등은 아시아·태평양의 질서 개편 과정에 겪는 진통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를 최소한 미·중 양극체제로 바꾸려 하고, 일본은 중국에 아시아의 ‘주요국’ 지위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저항한다. 그 틈에서 한국은 균형자로 존재감을 높여 주역의 하나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한·중·일에 얽힌 과거사가 협력은 고사하고 합리적 외교를 통한 질서개편을 어렵게 만든다.

 한·중·일 충돌에 미국은 희비가 교차한다. 일본 안보의 탈미국이 멀어지고 중국 견제의 호재를 만나 즐겁지만 한·일 분규가 중국을 시야에 둔 미국의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 구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한·중·일 지도자들이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행보를 계속하면 아시아 시대에 켜진 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의 지도자들은 통제력을 잃었다. 시민사회가 이성을 회복해 역사의 역주행을 막고 아시아 시대가 허상으로 끝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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