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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애플에 단순 하드웨어 기업이 종속되는 상황 … 인문학 중요성 절실히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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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CEO 인문학’이 유행을 넘어 한국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 AFP 외에도 성공회대의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 IGM의 ‘CEO 통섭인문학’, 고려대 박물관의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 국립극장 ‘전통예술 최고경영자 과정’ 같은 인문 강좌가 잇따라 개설돼 3~5년씩 꾸준히 수강생을 배출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이 유행을 넘어 성숙기에 접어든 것이다.

 첫 시작은 ‘스티브 잡스(사진) 콤플렉스’였다. 강신장 IGM 원장은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세계를 휩쓸자 ‘왜 우리는 잡스처럼 못하나’ 하는 충격과 열등감이 경영계를 뒤덮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와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과도 바꿀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인문학을 사랑했던 잡스에 대한 모방이 국내에 인문학 바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년간 AFP 수강생들의 졸업 논문에는 ‘잡스’와 ‘애플’이 수시로 등장한다. LG디스플레이 안병철 전무는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을 내는 반면, 여기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우리 회사는 적자에 허덕인다. 인문학적 접근을 하는 기업에 단순 하드웨어 기업이 종속되는 현상을 보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더욱 느낀다”고 적었다.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달리는 ‘추격자’의 자세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없다는 발견이다. 강 원장은 “결핍의식에서 시작된 인문학과 경영의 만남이 물리적 수준에서 이제 화학적 결합의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적 결합’은 학계의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4~5년 전, 기업인들이 인문 강좌와 조찬 특강에 몰려들기 시작할 때만 해도 교수 사회의 반응은 차가웠다. ‘돈 다 벌어놓고 이제 인문학 좀 안다 하는 허세 부린다’거나 ‘사장님들 골프 약속을 위한 인맥 쌓기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경영인들이 진지해지자 교수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서울대 AFP를 담당해온 이해완 미학과 교수는 “기업인 대상이니 교양 정도 가르치면 되겠지, 생각하고 왔던 교수들이 원전까지 읽어 예습해오는 치열한 학구열에 큰코 다치고 가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돈 버는 경영인의 인문학이 얼마나 진지하겠냐’며 은근히 낮춰보던 고정관념이 깨진다는 것이다.

 IGM 등에서 기업인이나 공직자를 대상으로 강연하는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나는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운동권 출신인데, CEO들을 만나며 학자들은 상상 못할 정도의 책임감과 고뇌를 안고 사는 경영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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