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해 적조 미스터리 … 물고기 떼죽음에도 원인은 짐작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남 여수 해역을 덮친 적조로 화정면 가두리 양식장의 돌돔들이 떼죽음을 당해 수면위로 떠올라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10시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신모(57)씨의 해상 가두리 양식장. 이틀 전 줄돔 18만 마리가 폐사한 탓에 신씨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줄돔 치어들을 폐기 처분한 뒤 텅 빈 상태인 5000여m² 크기의 양식장선 무거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신씨는 “자식같이 기르던 치어들을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남해안에 적조(赤潮)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달 들어 전남 여수와 경남 통영 등에서 물고기 80여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해 최악의 피해를 냈던 2003년의 ‘적조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가 오면 완화되는 녹조와 달리 적조는 더 확산되기 때문에 어민들은 더욱 불안하다. 적조 피해는 1995년 처음 발생한 이래 거의 매년 여름 나타나다 2008년 이후 뜸해졌다. 그러다 올해 다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정확한 원인과 메커니즘을 모른다는 점이다. 수산업계와 학계에서도 설(說)은 분분하지만 정답이 없다. 이인곤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적조는 첫 피해를 낸 95년 이후 20년 가까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적조는 특히 미스터리다. 적조가 다시 나타난 원인으로 폭염을 꼽는 의견이 많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적조를 일으키는 코클로디니움(식물성 플랑크톤의 일종)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임월애 박사는 “올해 연안 수온이 예년에 비해 3도가량 높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염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인태 해양수산정책기술연구소장은 “올해 수온은 높았지만 실제 바닷속 영양물질의 밀도는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조 피해가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호우 때 국내 댐들에서 방류한 물 속에 있던 영양물질이 갑작스럽게 번식하면서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날씨 탓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방류량 증가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 양쯔(揚子)강에서 흘러든 물 속에 포함된 영양물질이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2009년 싼샤(三峽)댐 건설로 방류량이 줄어 지난 4년 동안 적조가 뜸했지만 올 7월 중국 홍수로 싼샤댐이 대규모 방류를 하는 바람에 적조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서영상 수산과학원 과장은 “한반도 해역으로 흘러 들어오는 양쯔강 물이 한반도 해역의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한 메커니즘은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식 어민들은 1995년 발생한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건 때 대량으로 살포한 유화제로 인한 부영양화가 적조 확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2009년 유화제가 완전히 분해된 것으로 관측된 지 4년이 지나 또다시 대규모 적조가 발생하면서 이런 분석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특히 올해 적조가 경남 남해에서 처음 발견된 것도 기존의 양상을 깨뜨린 것이다. 과거의 적조는 붓돌바다(여수 개도~고흥 나로도)에서 처음 일어난 뒤 퍼졌다. 또 이번에 어류 폐사 피해를 본 양식 어장들은 육지와 섬 사이에 있어 적조의 ‘안전지대’로 분류되어 왔던 곳이다. 신씨는 “우리 양식장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 곳에 있어 2003년 최악의 적조 때도 끄떡 없었던 곳”이라며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적조에 대한 대응책은 바닷물에 황토를 뿌리고 산소발생기를 돌리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안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전남도는 적조의 원인을 밝히고 효과적인 예방책 마련을 위해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립유해생물연구센터를 건립해 달라고 농림수산식품부에 건의했다.

여수=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