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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중앙은행, 우리·기업은행과 5조원 예금 분쟁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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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란 중앙은행이 우리은행·기업은행에 넣어 둔 5조원 규모의 예금 해지 가능성을 들고 나온 이유는 낮은 금리다. 현재 계좌의 금리가 0.1%로 묶여 있기 때문에 별도로 정기예금 계좌를 만들어 한국의 정상 금리인 3% 선으로 올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기업은행은 계좌의 성격과 당초 금리 계약을 내세우면서 요구를 외면했다.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결제가 중단되면서 2700여 국내 기업들의 대이란 수출 대금 결제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이란도 원유 수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기업은행이 이란 중앙은행과 5조원 규모 예금 분쟁에 휘말린 것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한 201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이란의 핵 개발 의혹과 관련해 마지못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했다. 미 달러화를 통한 대외송금 금지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의 핵심이었다.

 한국 정부의 대이란 제재 방침이 확정되자 당시 신재현(66) 에너지자원협력대사는 2010년 9월 8일 이란 테헤란으로 날아갔다. 25년간 한·이란 경제협력에 관여해온 그는 제재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이란이 제재 때문에 공방을 벌이면 공멸한다”며 원화로 결제하자는 제안을 했다. 석유 수출대금을 한국의 시중은행에 예치하고, 한국 기업의 수출대금과 결제용으로 맞바꾸자는 방안이었다. 한국이 연간 80억 달러 규모의 이란 원유를 수입하고, 이란은 한국 공산품을 대량 수입하는 두 나라의 경제협력 관계를 감안해 묘안을 낸 것이다.

 이란은 이 방안에 관심을 보였고 같은 달 15일 이란 중앙은행 부총재가 서울로 날아왔다. 16일 밤샘 협상을 통해 하루 만에 계좌 개설을 전격 합의하고 10월 1일 우리·기업은행에 계좌를 열었다. 결제 문제 때문에 위기에 몰렸던 국내 기업들은 기사회생했다. 대이란 제재 속에서도 지난해에 대이란 수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국제 유가의 급등으로 예금 잔액이 크게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예금 잔액이 얼마 안 될 것으로 예상했던 이란 중앙은행의 계좌에 돈이 자꾸 쌓였다. 잔액은 우리·기업은행을 합쳐 한때 6조원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4조5000억~5조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잔액이 불어나자 이란 중앙은행은 계좌 개설 2개월 후부터 최소한의 결제대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기예금으로 돌리자고 제안했다. 이란 중앙은행은 “3%의 정기예금으로 전환하면 연간 1500억원의 이자 소득이 예상된다”며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란과의 원화 계좌 개설은 애당초 수출·수입 결제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으로 계좌의 성격이 다르다”며 “지금도 모든 결제에 대해 일일이 대이란 제재에 문제가 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계좌의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무역결제 계좌에는 원래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잔액이 예상보다 크게 불어난 만큼 이란 측의 요구를 경청하는 협상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좌 개설을 중개한 신재현 한·이란경제협회 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제재가 풀려 한국이 이란 시장에 본격 진출할 때를 감안해 이란 측의 입장도 긍정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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