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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탈북자, 한국 떠나려고 임대아파트 재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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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4월 탈북자 황모(33)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났다. 황씨가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가 그의 명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 황씨는 탈북자 주모(51)씨에게 3000만원을 보증금으로 맡기고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임대아파트를 세놓는 것은 임대주택법상 불법이다. 집주인이 바뀐 것을 수상하게 여긴 이웃 주민이 SH공사에 “임대아파트가 불법으로 재임대된 것 같다”고 신고했다. 세를 준 주씨는 외국으로 떠나 황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었다. 황씨는 현재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탈북자 이모(54·여)씨는 지난해 탈북자 장모(71)씨에게서 5000만원을 빌렸다. 이씨는 장씨의 돈을 갚을 형편이 안 되자 자신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를 장씨에게 불법 양도했다. 그러나 불법 임대가 탄로나 이씨는 임대아파트에서 퇴거조치 당했다.

 이처럼 탈북자 사이에서 임대아파트를 세놓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 탈북자단체와 SH공사 등에 따르면 2008년부터 서울 강서구·양천구·노원구 등의 임대아파트에서 이를 배정받은 탈북자가 다른 탈북자나 중국 동포에게 세를 주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탈북자 관련 인터넷신문 ‘뉴포커스’ 장진성(41) 대표는 “서울의 경우 탈북자가 배정받은 임대아파트 10곳 중 최소 한 곳은 불법 임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를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탈북자의 경우 주민등록 전입신고 후 2년간 주택에 대해 소유권·임대권·전세권 등의 양도를 금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목돈 마련을 위해 ‘임대아파트 세놓기’를 해오고 있다. 세를 주는 사람들은 상당수 남한에 적응하지 못해 외국으로 떠나는 탈북자들이다. 불법 임대로 외국생활 정착자금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이들은 일감을 찾아 서울이나 수도권을 찾은 탈북자·중국 동포들이다. 탈북자 정모(49)씨는 “경기가 안 좋아진 2008년부터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도 늘어나고 불법 임대가 성행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농촌에 내려가는 탈북자에게 최대 3000만원을 지원하면서 불법 임대가 더 늘었다고 한다.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를 세놓은 뒤 지원금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 재임대는 불법이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할 수 없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주변 인맥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거래 대상을 찾는다.

 하지만 SH공사가 2009년부터 적발한 탈북자들의 불법 임대는 지금까지 5건이 전부다. “세대주가 지방에 일하러 갔다”고 둘러대거나, 자신이 세대주라고 우기면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게 SH공사의 해명이다.

이현 기자 <2str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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