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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대표해 사죄하고 나니 홀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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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잘못된 과거를 알면서도 그동안 용기가 없었습니다. 일본인을 대표해 사죄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1984년 한국으로 시집와 충북 청주에 살고 있는 일본인 미야자키 사요코(58·사진)는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충북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일본 여성 40명과 함께 청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민들을 상대로 한·일 우호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서명운동도 벌였다. 500여 명의 시민이 서명에 참여했다. 그는 “최근 독도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발생해 시민들의 참여가 적을까봐 걱정했다”며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미야자키를 비롯한 일본 여성들이 사죄에 나선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정작 일본은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하루바삐 해결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문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버지의 나라와 어머니의 나라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힘들어하는 자녀를 보며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 자녀를 둔 미야자키는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이 한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사실을 알고 아이들의 상처가 컸을 것”이라며 “성장하는 내내 힘들었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야자키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일본 교과서에선 위안부 문제가 간략하게만 언급돼 있어 일본 사람 대부분이 그런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듣고 같은 여성으로 마음이 아팠다”며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인 모두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처음 독립기념관을 찾아본 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라는 생각에서다.

미야자키는 지난 5월 모임을 결성하면서 충북에 사는 300여 명의 일본 여성과 만나고 통화해 설득했다. 그는 “처음에는 남편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플래카드를 만들고 호소문 제작에 도움을 주면서 응원했다”고 말했다. 미야자키는 “일본 언론들도 국민들이 역사를 정확하게 알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우리 활동이 역사적 죄를 씻기엔 부족하겠지만 두 나라의 가교 역할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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