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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개 국어 간판 어울린 ‘리틀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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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남 김해시 서상동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 인근에 있는 마트에서 외국인 취업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해시 주촌면의 기계설비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레이 바우티아 벨트랄(38)이 주말마다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버스로 30분 거리인 김해 동상·서상동 일대의 외국인거리에 나가 고국 친구들을 만나 고향 음식을 먹는 게 벨트랄에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 필리핀 음식으로 식사를 하거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휴일마다 이곳에 온다”며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해외국인거리는 ‘리틀아시아’라 부를 만한 곳이다. 거리 간판은 영어와 한국어에 중국·베트남·몽골·스리랑카·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문자가 뒤섞여 있어 동남아의 한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주말이면 수천 명의 외국인이 모여들어 하루 종일 북적인다. 각국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과 옷가게, 휴대전화 가게, 중고 물품 가게들이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로 성업 중이다. 노래방에는 베트남·필리핀 등 나라별 노래 목록이 따로 비치되어 있다. 2008년 베트남에서 와 부산 사상공단에서 용접일을 한다는 두옹 팜씨(28)는 “동남아 여러 나라의 가게가 몰려 있어 쇼핑·식사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고 말했다.

 동상·서상동에 외국인타운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께다. 이곳의 재래시장 물건값이 싸다고 소문나면서 외국인들이 모여들자 이들을 위한 야채·과일가게, 옷가게, 음식점 등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6000여 개가 몰려 있는 김해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들면서 이 일대는 급격하게 ‘글로벌촌’으로 탈바꿈했다. 김해시 통계에 따르면 현재 동남아 15개국 출신의 근로자 2만3000여 명이 김해에 살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할 때 한 달 임금은 100만원 남짓이지만 근로기준법상 한도인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150만~20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2008년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지원센터도 문을 열었다. 고용노동부의 위탁을 받아 동아대가 운영 중인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에서는 동남아 15개국 출신의 상담사가 배치돼 임금체불·송금·통역 같은 고충을 해결해 준다. 한국어 교육과 무료진료도 받을 수 있어 외국 근로자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지원센터의 장철호 부장은 “주말·휴일이면 500~1000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센터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손님 덕분에 위축됐던 재래시장 상권도 되살아났다. 과일과게 주인 김모(57)씨는 “대형마트 등이 김해에 들어서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상권이 크게 위축됐지만 지금은 외국인 덕분에 먹고사는 가게가 많다”고 전했다. 부작용도 없지 않다. 술에 취한 외국인들끼리 시비가 붙어 폭력사건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외국인 상대의 성매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준기(56)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장은 “유럽계 외국인과 달리 아직도 아시아계 외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며 “지역 주민들과 외국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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