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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도 중앙아 오지 녹인 한국 청년의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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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즈베키스탄 히바의 보육원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 겨울엔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는 이곳에서 김영준씨는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통해 다른 세상을 가르쳤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개발도상국 오지마을 봉사가 5년을 넘겼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2년을 보냈는데 제대로 못한 게 아쉬워 더 외진 곳에서 고아들과 3년을 또 지냈다. 그런 따뜻한 마음에 반한 현지 여성이 그의 아내가 됐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 김영준(39)씨 얘기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김씨는 2005년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해 6월 입원한 상태에서 회사가 업무 지시를 내리자 직장 생활을 포함한 인생 전반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퇴원 후 서울 대학로에서 우연히 본 코이카 단원 모집공고가 인생을 바꿨다. 8주간 러시아어 교육을 받고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떠났다. 2년 동안 한 고교의 2, 3년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다. 학생들이 애를 먹여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지난달 20일 결혼한 김영준씨(오른쪽) 부부.

국내 의류업체에 취업해 우크라이나를 다시 찾았다. 봉사활동을 했던 그 학교의 교장이 말했다. “미스터 김이 지금 정도 러시아 말을 했으면 애들과 가까워졌을 텐데…”. 그 말이 머리를 쳤다. ‘이번엔 더 잘할 수 있겠다.’

 다시 짐을 꾸려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 수도 타슈켄트에서 1000㎞ 떨어진 오지 히바의 ‘20번 보육원’이었다. 150명의 고아와 불우가정 아이를 만났다. 코이카에 요청해 신형 컴퓨터 15대, 캠코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교실 4개를 리모델링했다. 컴퓨터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가르치며 꿈을 심어줬다. 주머니를 털어 14명의 아이들에게 타슈켄트·사마르칸트를 견학시켰다. 그들에겐 이런 여행은 ‘꿈’이다.

 아이들은 김씨를 ‘조영’이라 불렀다. 한국드라마 ‘대조영’ ‘주몽’ 등이 폭발적 인기를 끌어 한국 사람만 보면 대조영으로 봐서 그렇게 부르게 했다. 한국어도 가르쳤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울 정도가 됐다. 든 정을 끊지 못해 2년 임기에, 1년 3개월을 연장했다. 히바는 하루에도 20차례 전기가 끊기고 물에는 소금기가 잔뜩 묻어 나온다. TV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한겨울에 영하 20~30도로 떨어지는데도 가스가 잘 안 들어와 나무 난로로 대신했다.

김씨의 헌신적인 봉사를 지켜본 마을 주민이 ‘중매’를 섰다. 공무원 출신 주무라드(29). 첫눈에 반해 지난달 20일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보육원을 떠날 때 아이들과 ‘별 헤는 밤’을 낭송하고 전통춤을 함께 췄습니다. 한 명씩 안아주고 싶었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러질 못했어요.” 그는 “아이들과 사과 한 입씩 베어먹으면 정이 들고, 사랑을 나누면 즐거워진다.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달 말 임기를 끝내고 귀국, 내달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김씨는 “어려운 사람, 외국의 가난한 동네를 도우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질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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