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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메이커 광장 ⑧ 의도성 없는데 정치적 행위라 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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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스포츠에서 경기 외적인 의도는 배제되어야 한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뒤늦게 경기 외적인 문제가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세기 올림픽의 역사는 경기의 승리가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우위와 영광으로 간주되는 지독한 경험을 하였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헌장 50조를 통해 ‘어떠한 종류의 시위 또는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선전’을 차단해 왔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가 논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 후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피켓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세리머니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있었다. 여자 육상 400m 금메달을 딴 캐시 프리먼이 호주 원주민의 기를 흔들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비난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백인과 원주민의 화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박종우와 프리먼의 행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물어 박종우의 행위는 과연 정치적인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IOC가 말하는 정치적 행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만일 박종우의 행위가 정치적이라면 육상 경기 입상자가 국기를 어깨에 걸고 경기장을 뛰는 세리머니도 모두 정치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국기 속에는 이미 자국에 대한 프라이드와 선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 체조 선수들이 착용한 유니폼이다. ‘욱일승천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답변은 궁색하다. “적어도 IOC 내에선 논란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문제가 될 경우에만 문제로 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스포츠 밖의 문제들이 경기장에 들어오게 되면 스포츠는 손쉽게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올림픽은 온갖 정치적 이슈들이 난무할 것이다. IOC가 경계하는 것도 이런 위험성이다.

 그러나 박종우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정치적 행위는 의도성이 있어야 하나 박종우는 그런 의도성이 애초에 없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과 비교해 보자.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대에 올라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쳐들어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의도된 행위였다. 그러나 그들은 메달을 박탈당하지 않았다.

 박종우가 정치적 혹은 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다면 더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몸통에 큼지막하게 문구를 새겨두었다가 웃통을 벗어 젖히거나 아예 영문으로 준비된 피켓을 들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마침 상대가 일본이었고 그 극적인 환희와 감동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때 문득 한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국토의 최동단 독도에까지 승리의 기쁨을 뿌리고 싶은 열혈 청년의 순수한 애국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프리먼이 원주민의 기를 흔든 것처럼.

 나라 사랑은 순수한 행위다. 다만 상대국을 무시하거나 조롱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박종우의 피켓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일반적인 사실이어서 무시나 조롱도 아니다. IOC도 이런 대한 청년의 순수함을 알아주리라 믿는다.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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