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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간 한국 男대학생, 대낮에…황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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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학생 김모(22)씨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대로변을 걷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김씨의 얼굴에 물총을 쐈다. 김씨가 얼굴을 감싸며 당황하자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나 현금이 들어 있는 김씨의 가방을 낚아채 달아났다. 김씨는 즉각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서에는 김씨와 비슷한 일을 겪은 한국 대학생 3명이 신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길을 가는데 스페인 남성 5명이 나타나 가방을 강탈해 갔다”고 하소연하는 중이었다. 김씨는 “유럽 여행을 할 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낮, 대로변에서 건장한 남자 대학생들에게까지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를 조사한 스페인 경찰도 “요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져 절도 범죄가 점점 대담해지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국내 여행객들이 유럽 여행을 떠났다가 도난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제 불황을 겪는 유럽 지역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 등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가 유럽 지역 한국 공관에 접수된 도난 신고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09년 834건이었던 절도 사고가 지난해 1476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7월까지 이미 759건을 넘어섰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도난 사고 증가율은 통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페인·그리스 등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국가에서의 도난 사고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스페인 여행객들의 도난 신고는 2009년 218건에서 지난해 319건으로, 그리스의 경우엔 2009년 26건에서 지난해 39건으로 늘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경제위기와 범죄 발생률은 밀접한 상관 관계를 지닌다”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 소매치기 등으로 먹고살던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또 “한국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맨홀 뚜껑이나 음식을 훔치는 등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 것처럼 유럽에서도 생활고로 인한 절도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재외 공관은 인력 부족을 탓하며 손을 놓은 상태다. 도난이나 강도를 당했을 때 보험 체계도 허술하다.

 이모(43)씨는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여권·지갑·카메라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을 도둑맞았다. 범인은 차량의 창문을 깨고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이씨는 곧바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영사관 관계자에게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모르니 대신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영사관 직원은 “인력이 부족해 대리 접수는 불가능하다”고만 답했다. 어렵사리 경찰에 신고 접수를 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씨는 여행자보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보험 회사 측은 “최대 20만원까지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현지 영사관에서 보호받지도 못하고 여행자보험도 큰 소용이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여행자보험 상품의 경우 상해 사고는 1억원까지 보장하지만, 물품 도난은 건당 최대 20만원으로 제한돼 있는 게 일반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국장은 “유럽 여행객들의 도난 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보험사가 합리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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