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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 쓰는 돈, 타 쓰는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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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창희
사회부문 기자

서울시는 요즘 돈 없다고 난리다. 부동산 거래가 줄면서 주 수입인 취득세가 올해 세입 예산(3조3938억원)보다 5000억원 이상 덜 걷힐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때문에 취득세의 절반을 지원받는 자치구도 울상이다. 지방은 더 열악해 경상남도는 올 상반기 취득세가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호들갑이지만 솔직히 담당 기자로서 이들이 돈 없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예산이 30조원(자치구 포함)이나 되고, 학교지원과나 복지정책과는 과 단위로 1조원이 넘는 돈을 집행한다. 몇 년 사이 사회복지제도가 강화되면서 자치단체들이 쓰는 돈은 팍팍 늘고 있다.

 벌이는 주는데 씀씀이는 커지는 상황은 뭔가. 정확히 얘기하면 자치단체들이 돈이 없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스스로 걷어서 쓰지 않고 정부에서 타 쓰는 구조라고 말하는 게 맞다. 국세와 지방세를 8대2의 비율로 거두지만 이 돈은 거꾸로 4대6의 비율로 자치단체들이 더 많이 쓴다. 재산세 위주의 지방세는 2003년 이후 비중이 계속 줄고 있지만, 자치단체가 쓰는 지출 비중은 늘고 있다. 무상보육 같은 국고보조사업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거둬 누가 쓰든 국민 입장에선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손 벌리는 제도가 고착화되면 지방 분권에도 역행하지만 자치단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학에 나오는 연성예산제약(soft-budget constraint)이론은 최근 지방자치제도를 연구하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예산제약이 엄격하다고(hard) 느끼지 않고, 유연하다고(soft) 느끼는 경제주체의 행위는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주머니 사정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방정부의 과잉 지출을 유도한다. 책임감 없이 펑펑 돈을 써대다 파산위기에 처한 인천시와 태백시도 그런 사례다.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최근 정부와 자치단체들의 줄다리기도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상보육을 밀어붙인 국회와 정부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지만, 공동 분담 원칙을 무시하고 정부가 모든 부족분을 지원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자치단체들도 문제다. 심지어 일부 자치단체들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도 무상보육 예산은 책정하지 않고 있다. 끝까지 버티면 중앙정부가 해결해줄 텐데 굳이 자기 돈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지금처럼 국세로 대부분을 거둬 지방에 나눠주는 구조하에서는 어쩌면 지방정부의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의 책임의식을 끌어올릴 방안이 절실하다.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비율을 확 높이고, 대신 책임을 더 지우는 지방 재정분권의 도입이다. 그 방안이 자치단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지방소비세 이전 비율 확대이건, 독자적인 세목을 신설하는 방식이건 이제 재정분권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