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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환자 안전, 의료사고 예방 제도적 장치 마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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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국내 의료기관이 몇 년 전부터 국제의료기관평가기구(Joint Commission Inter national·JCI) 인증을 받기 시작했다. JCI는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까지 겪는 모든 분야를 심사해 안전하고 진료 수준이 우수한 의료기관에 인증을 내주고 있다. 10여 개 분야에서 1200여 가지 항목을 평가한다.

 선진국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미국 의료시스템 중심의 JCI 인증을 받으려는 걸까. 일각에선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병원의 JCI 인증 절차를 수년간 담당했던 필자도 ‘정말 의미가 있는 인증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의료시설·수술 수준·치료 성적 등을 보면 국내 의료는 분명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JCI 인증에 눈을 뜨기 전까진 환자 안전을 고려한 의료문화는 없었다. 치료할 환자가 진료기록서에 명기된 환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치료가 끝나는 시점까지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의료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종 약물이나 혈액이 잘못 투여됐다. 비교적 쉬운 시술을 받고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환자가 사망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지만 심심치 않게 수술할 부위가 바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사회는 고발과 비난, 책임 여부에만 관심을 가졌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일찌감치 의료 안전에 대해 많은 연구와 제도적 장치를 도입했다. 이것을 우리나라 의료에 도입해 선진 의료다운 면모를 갖추자고 한 것이 JCI 인증 도입의 근본적인 취지다.

 이미 JCI 인증을 획득한 필자의 병원은 최근 3년마다 실시하는 재인증을 받았다. JCI 인증이 가져온 병원의 변화는 크다. 병원의 모든 시설과 시스템은 환자의 감염과 의료사고 예방에 맞춰져 있다.

 중대한 검사와 시술 때마다 반드시 치료할 환자가 맞는지 두 번 확인한다. 수술 전에는 수술 받는 환자가 맞는지 두세 번 검증한다. 또 수술 바로 직전에 다시 한번 환자와 진단명·수술 부위·수술명을 확인한다.

 입원 기간 내내 환자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철저하게 기록된다. 중대한 결과는 반드시 확인해서 통보한다. 의사가 사용하는 약물은 자동으로 검증 절차를 거친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행위와 의약품은 수시로 찾아내 개선한다. 심지어 병실의 냉장고 온도까지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환자의 이름도 묻지 않고 수술하던 JCI 인증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의료사고의 60~70%는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의료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개선 활동을 하는 게 JCI 인증의 취지다. 이런 노력은 한국 의료문화의 선진화에 초석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JCI 인증을 받든 받지 않든 환자의 안전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수술은 잘하는데 종종 의료사고를 내는 의료기관에 요행을 바라고 내 몸을 맡길 환자가 있을까. 

박종훈 고려대의료원 대외협력실장
(고려대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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