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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학교폭력] ‘가해 사실 학생부 기재’ 논란 … 웃음치료사 진진연씨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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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김상곤(경기)·김승환(전북)·민병희(강원)·장휘국(광주) 등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이 “인권 침해”라며 반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과부는 지침을 어기면 징계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폭력의 상처로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끝에 웃음치료사로 새 인생을 살고 있는 진진연(41·중앙일보 2011년 12월 30일자 1면·사진)씨가 본지에 편지를 보내왔다. 진씨는 ‘가해자 인권’을 얘기하기에 앞서 피해 학생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게 올바른 교육정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이슬이 된 승민이의 어머니를 지난 2일 밤에 만났습니다. 집에 오는 막차를 놓칠 만큼 오래 얘기를 나눴죠. 거실에 놓인 승민이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승민이가 그토록 큰 아픔을 겪도록 놔뒀던 어른들이, 제 자신이 너무 밉고 부끄러웠습니다. 20여 년 전 제가 겪었던 고통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정부가 처음 학교폭력종합대책(2월 6일)을 내놨을 때 기대를 했습니다. 6개월이 흐른 지금은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학교폭력은 분명한 범죄입니다. 그걸 학생들에게 알려주려고 학생부에 폭력 사실을 기록하기로 한 것입니다.

몇몇 교육감들께서 학생부 기재가 ‘가혹한 처사’라고 말씀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습니다. 수십 년 동안 피해 학생들은 제대로 사과 한번 못 받고 숨어 지냈습니다. 피해자들이 받아온 평생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겁니다.

 어른은 아이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야 합니다. 그동안 학교폭력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가해 학생들은 잘못을 뉘우칠 기회도, 옳고 그름을 배울 계기도 없었습니다.

학생부는 말 그대로 학교생활에 대한 모든 기록입니다. 성적뿐 아니라 아이의 인성과 생활 태도 모두를 담고 있는 것이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를 채우고, 잘못이 있다면 뉘우치고 성숙해 가는 모습을 학생부에 담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일부 교육청에선 ‘가해자 인권 보호’란 미명 아래 가해 학생들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뺏고 있습니다. 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내가 지켜야만 나 또한 그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겁니다. 정부와 교육청이 머리를 맞대고 이런 원칙들을 가르쳐 나갈 수 있는 교육정책을 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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