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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뿐인 LTV … 11억 아파트 9억 빌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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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해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담보로 저축은행에서 3억6000만원을 빌렸다. 이미 은행에서 6억원을 빌려 LTV(주택담보인정비율) 한도가 50%를 넘었지만, 대출 심사는 무사통과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저축은행에서 실행된 주택담보대출 2286건 가운데 A씨처럼 LTV 한도 규제를 위반해 대출해준 건수는 무려 1968건(86%)에 달했다. 방만한 대출은 부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4월 말 기준 저축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8.2%로 은행권(0.9%)의 9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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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이 허술하게 이뤄진 제2 금융권의 부동산 담보대출에 메스를 들이댄다. 금융감독원은 12일 저축은행·보험사·할부금융사 등으로부터 부동산 담보대출 관련 자료를 넘겨 받아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2 금융권의 부동산 담보대출 잔액은 저축은행이 20조3000억원, 상호금융이 160조1000억원, 보험사 29조5000억원 등 총 211조원이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우선 총 82조2000억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국내 전체 가계 대출잔액(올해 1분기 기준 약 911조원)의 9%에 해당한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경우 은행보다 관리가 허술한 제 2금융권에서 먼저 부실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 2금융권의 LTV는 최고 70%로 은행(수도권 50%)보다 규제가 느슨하다. 더욱이 은행에서 LTV 한도를 꽉 채운 집을 담보로 추가로 빌려주는 후순위 대출이 많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처럼 아파트 가격이 내리면 담보가치가 하락해 LTV 한도를 초과하는 대출이 늘기 마련”이라며 “이 경우 경매 등을 통해 원금 상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순위 채권이 많은 제2 금융권은 채무회수가 어려워 은행보다 먼저 부실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주택 담보가치가 대출금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깡통 아파트’까지 속출하고 있어 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3~6개월마다 담보가치를 재평가하지만, 제2금융권은 그렇지 않아 시장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부동산 호황기 때는 이면계약 등 각종 편법을 사용해 LTV를 80∼90%까지 높여 대출을 늘린 만큼 제2 금융권에서 이미 부실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금감원은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상가·공장·토지·임야 등을 담보로 한 상업용 부동산대출에까지 조사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LTV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제2 금융권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라며 “그만큼 은행보다 위험이 크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이처럼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는 것은 자칫 제 2금융권의 부실이 은행 등 금융 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는 만큼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서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연세대 김정식 상경대학장은 “금융 시스템이 무너진다면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이 주로 이용하고 연체율도 높은 제2 금융권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만기가 도래하는 제2 금융권 대출부터 채무 조정 및 만기연장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택담보인정비율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가능 한도를 말한다. 즉,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집의 자산가치를 얼마로 보는가의 비율을 말하며 보통 기준시가가 아닌 시가의 일정 비율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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