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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공해 ‘검색어 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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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지난 5일 KBS2 개그콘서트에 배우 민효린이 출연했다. 개그맨 송준근의 여자친구 역할이었다. 그는 식당에서 개그우먼 신보라와 입담 대결을 벌이다 콩국수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내 얼음이 사라졌어요. 이건 분명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정도면 눈치 없는 사람도 헛웃음을 짓게 된다. 여배우가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나온 영화를 홍보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이런 행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젠 이런 꼼수가 바이러스처럼 온라인으로 퍼진다.

 민효린이 개그콘서트에서 재킷을 벗고 등이 훤히 드러난 뒤태를 공개하자 온라인 포털사이트도 부산해졌다. ‘민효린’이란 이름은 순식간에 네이버 등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그가 출연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포털에 접속한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왜 검색어 1위일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연스레 마우스 커서가 검색어를 따라가게 된다.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포털은 페이지뷰가 늘어난다. 페이지뷰가 많아야 돈벌이가 되는 게 포털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검색어 순위에 오른 연예인이나 영화는 쏠쏠한 홍보효과를 거둔다. 실시간 검색어에 목매는 게 연예 기획사의 홍보 수법이니 포털과 기획사는 죽이 잘 맞는 셈이다.

 이제 어떤 검색어가 순위에 오르는지 보자. 민효린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단어들은 이렇다. ‘신보라·김지민·메이퀸·김기리…’. 이건 검색어가 아니라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명단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검색어 순위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국적불명의 상술이 포털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네이버 홈페이지에는 ‘주간 급상승 검색어, 직장인 인기 검색어, 싱글녀 인기 검색어, 대학생 인기 검색어, 신혼부부 인기 검색어’ 등 희한한 검색어 순위가 24시간 떠 있다. 검색어 리스트 옆에는 빠지지 않는 게 있다. 검색어처럼 꾸며진 쇼핑 품목 순위다. 결국 검색어는 페이지뷰뿐 아니라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미끼인 셈이다.

 이제 궁금해졌다. 어떤 근거로 검색어 순위가 매겨지는지. 포털 관계자에게 물었다. “검색어 1위는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인가?” 대답은 이렇다. “아니다.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 검색어 순위를 정한다.” 구체적인 검색 로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이어졌다. 이 순간 네이버가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의 요청에 따라 그와 관련한 소문을 검색어에서 삭제했다는 논란이 떠올랐다. 검색어 순위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의심이 퍼지는 이유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 기능은 필수다. 중요한 정보를 찾는 데 요긴한 서비스다. 그렇다고 시시껄렁한 검색어 순위를 내세워 네티즌을 유혹하고, 순위를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는 건 클린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다. 포털사이트를 도배한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인터넷 공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