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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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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주택가 공사장을 지나가던 한 아줌마가 말한다. “여긴 2종 일반주거지역이라 용적률이 200%밖에 안 돼. 기껏해야 4층이지.” 다른 아줌마가 거든다. “우리 아파트 재건축도 용적률 때문에 사업성이 없다는 거야.” 부동산 개발에 대한 전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화다. 이를 엿듣는 순간 나는 한국 도시를 움직이는 힘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용적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을 고상하고 심오한 예술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부감이 들겠지만 현장은 ‘용적률’이라는 산술식이 지배하고 있다.

 용적률은 땅과 그 위에 서 있는 건축물 바닥 면적의 합(연면적)과의 비율이다. 건축물의 연면적이 대지 면적과 같으면 용적률은 100%, 두 배이면 200%가 된다. 대지의 절반에 건축물이 서 있다고 가정하면 용적률 200% 건축물은 4층 높이가 되는 것이다. 용적률이 두 배가 되면 건축물도 두 배 크기로 지을 수가 있다. 임대료를 두 배로 받을 수 있으니 땅의 가치는 두 배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용적률은 개발이익과 등식이다.

 정부는 도시의 적정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용적률을 엄격히 제한한다. 주거, 상업, 공업, 녹지 지역을 세분화하고 구체적으로 허용한도를 지정한다. 총론은 이처럼 간단명료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전문가가 아니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용적률을 올려주는 각종 인센티브도 숨어 있다. 이런 법 제도의 틈새에서 최대의 용적률을 찾는 온갖 묘수와 편법이 등장한다. 지역 주민들은 용적률을 높여달라고 집단행동을 하고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은 표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가기도 한다.

 그만큼 용적률이 건축설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도시의 이면도로에는 칼로 내려친 것 같은 건축물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 사선제한 규정을 지키면서 용적률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이런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서울 도심의 랜드마크 종로 타워의 거대한 구멍도 주변 고층건물과의 용적률과 층수 경쟁의 산물이다. 용적률 게임의 압권은 아파트 단지 설계다. 평형별 조합, 향, 인동간격, 법정 주차 대수 등의 변수를 수학 공식처럼 풀면서 최대 용적률을 지향하는 고도의 공간 조합 공학이다. 디자인은 미미한 변수에 불과하다.

 아파트 발코니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발코니는 바닥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외부공간이다. 여기에 창을 달아 실내 공간으로 전용하다가 아예 거실과 방으로 확장해서 쓴다. 건설사는 처음부터 확장을 전제하고 시공을 한다. 건설사는 수익을 더 내고, 소유자는 더 큰 집을 가지면서도 세금을 덜 내고, 정부는 이를 양성화해 주는 구도다. 3 자는 밀도의 허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공간의 허구를 인정할수록 공공 공간의 질은 떨어진다.

 용적률 게임은 최대 개발이 최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논리 아래 다른 모든 것을 종속 변수로 만든다. 이 게임은 땅과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때 먹혀든다.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따르면 1963년부터 2007년까지 44년 동안 월평균 실질소득은 15배로 오른 반면 서울의 땅값은 1176배로 뛰었다. 산술적으로는 남한 땅을 팔면 면적이 100배가 되는 캐나다를 무려 6번 살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건축의 수준과 품질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진부한 건축을 바꿔보려는 노력 자체가 순진하거나 사치스럽게 보이는 때였다.

 이제 용적률의 게임이 부동산 위기와 함께 일그러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빈집이 생겨나고 집을 팔고 싶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위기는 중산층을 주저앉히고 국가 경제를 위협할 태세다. 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전히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혹독한 시련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일한 결론처럼 보인다.

 체중을 불리는 것은 쉬워도 줄이는 것은 고통스럽다. 고도 성장기에 우리 모두가 만든 부동산 불패 신화가 아직 어른거린다. 그래서 우리 안에 남아있는 거품을 빼기가 더 어렵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