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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닮은꼴 일색 … 대법원 시계 8년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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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는 1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고영한·김신·김창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고 후보자는 재석 의원 270명 중 찬성 226표·반대 39표·기권 5표를 얻었다. 김신 후보자는 찬성 162명·반대 107명·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김창석 후보자는 찬성 173표·반대 94표·기권 3표였다. 이들 3명은 대통령 임명을 거쳐 대법관 업무를 시작한다. 이로써 전임 대법관 4명의 임기가 만료된 지난달 10일부터 22일간 지속된 사법부 공백 사태는 일부 수습됐다. 하지만 자질 논란 속에 지난달 26일 사퇴한 김병화 후보자의 후임자 선출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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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명의 대법관이 임명되면 전체 14명의 대법관(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포함) 중 13명(1명은 공석)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선임된 인사들로 채워지게 된다. 문제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 이전에 비해 후퇴했다는 점이다. 대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의 시계가 8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첫 여성 대법관(김영란 대법관) 탄생 이후 대법원은 구성원의 다양성면에서 진전을 이뤄 왔다. 2005년 진보성향 변호사였던 박시환 대법관, 비(非)서울대·노동법 전문가인 김지형 대법관이 동시에 취임했고 2006년 중도진보 성향 정통법관 출신인 이홍훈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이 가세하면서 중도진보 대법관, 이른바 ‘독수리 5형제’ 체제가 구축됐다. 그러나 지난달 전 대법관을 끝으로 독수리 5형제가 모두 퇴임하면서 대법원은 8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실제로 외관상 드러난 현재 대법관 13명의 이력과 성향은 대동소이하다. 50대 남성·서울법대 출신, 법원행정처 간부와 법원장 출신 등으로 요약된다.

 이는 양 대법원장의 소신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이) 외형적으로 다양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대법원에 연간 3만6000건이 접수되는 것을 고려하면 고도의 법률적 소양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양성보다는 안정성과 전문성에 무게를 둔 발언이었다. 취임 이후 그가 임명한 대법관 5명의 성향은 큰 차이가 없다. 김병화 후보자의 후임으로 진보 성향의 외부 인사 등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이래선지 대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역시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대법원은 지난해 ‘도가니’ 판결 논란, 법관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른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판결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대법원 표지석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52) 교수는 1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대법관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대법원이 소외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법원 다양성 확보를 위해 대법관 후보추천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53) 교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비당연직 위원 수를 늘리고 시민단체 인사를 추천위에 넣거나 국회 등 외부기관이 위원을 추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구성 어떻길래=13명의 대법관 중 비서울대 출신은 박보영(한양대)·김창석(고려대) 대법관뿐이다. 유일한 여성인 박 대법관이 다양성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대법관은 비서울대 출신이지만 고법부장, 법원도서관장을 거친 엘리트 법관이다. 고영한·민일영·이상훈·이인복 대법관 등 서울대 법대 74학번 동기도 4명이나 된다. 고법부장 이상 고위 법관 출신이 11명이고 이 중 법원행정처 간부를 지낸 사람은 9명이다. 양창수(학자)·박보영(변호사) 대법관이 외부 인사 출신으로 분류되지만 판결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박시환 대법관 퇴임 이후 대법원이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독수리 5형제’ 시절 치열하게 이뤄졌던 대법원 내 토론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은 모두 23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놨지만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판결은 별로 없었다.

이동현·이소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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