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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고졸 취업 확대, 학력 제한과 직장 내 차별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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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OB맥주가 신입사원 채용 때 ‘4년제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 제한을 철폐하기로 했다고 한다. 주류업계 고졸(高卒) 신화의 주인공인 장인수 신임 OB맥주 대표이사의 결단이다. 판매 경쟁이 치열한 주류업계에서 최고경영자의 자리까지 오른 장 대표 스스로가 학력 제한이 무의미한 차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장 대표는 “(인턴 채용 때) 학력 제한을 없애고 영어 성적을 요구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업무역량이 뛰어나고 패기 있는 젊은이가 많이 지원했다”며 학력 제한을 철폐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기업들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 아닌 경우 직원 채용 때 굳이 학력 제한 요건을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신입사원 채용 때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관행적으로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이란 응시조건을 달았다. 이 같은 관행은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인플레’를 낳는 원인이 됐다. 그 바람에 고졸자의 취업 기회는 원천적으로 박탈되고 대졸자의 상당수가 실업자로 전락하는 국가적인 인력 낭비가 초래된 것이다.

 최근 금융권과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졸자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고졸 직종을 특정해 채용할 경우 고졸자 취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졸 취업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무분별한 대학 진학을 막기 위해서는 특수 직종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학력 제한을 철폐할 필요가 있다. 고졸 직종을 특정할 게 아니라 대졸 학력이 꼭 필요한 직종만을 특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학력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고졸자를 채용한 후에는 이들이 회사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의 세심한 관리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가 꿈에 부풀어 취업했지만 회사의 무관심과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중도 탈락하는 사례가 많다면 ‘고졸 채용’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본지 25일자 10면 참조). 기업들이 ‘고졸 채용’을 일시적인 생색내기가 아니라 고용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생각한다면 승진 차별을 없애는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멘토제’나 ‘고졸 커뮤니티’ 등 고졸자 적응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고졸 사장과 고졸 은행장 등 이른바 입지전적인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 적지 않다. 대졸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불굴의 의지와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졸자의 성공이 더 이상 신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고졸 취업자가 우리 사회의 보조인력이 아니라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학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취업 전에는 응시 기회를 박탈하는 학력 제한을 없애고, 취업 후에는 유무형의 직장 내 차별을 없애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