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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을 숲 만든 ‘소나무 아저씨’ 집념 4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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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소나무 아저씨’ 정해동씨가 19일 아들 재원씨와 함께 울산시 북구의 동대산에서 자신이 심은 소나무들을 살피며 돌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19일 오후 울산시 북구에 위치한 해발 440여m의 동대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길 양편에 5m 간격으로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큰 나무는 키가 8m나 됐다. 푸른 소나무의 행렬은 등산로 2㎞를 따라 정상까지 이어졌다. 산책길에 만난 60대 주민은 “40년 전만 해도 동대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었는데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지역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이 많은 소나무는 누가 심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소나무 아저씨”라고 답했다. 어려서부터 북구에서 살아온 정해동(63)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40여 년간 심고 가꾼 소나무는 무려 7000여 그루나 된다. 요즘도 매일 오전 5시면 낫과 소나무 영양제 등을 챙겨 들고 3시간여 동안 등산로를 오르내리며 소나무를 돌본다.

 정씨의 소나무 사랑은 23세 때이던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산 지역의 조선기자재 업체에 다니던 정씨는 동대산 정상 부근의 부친묘를 자주 찾았다. 그러면서 산불과 벌목으로 벌거숭이가 된 산이 안타까워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가 소나무를 택한 이유는 어릴 적 부친이 동대산에서 소나무 땔감을 해와 가족 생계를 돌봤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동대산의 소나무 덕에 컸으니 소나무로 신세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에는 소나무 새순을 얻어와 등산로 옆에 심었다. 하지만 새순이 자라 소나무 모양이 되는 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이렇게 해서 언제 소나무를 다 키우나”라는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당시 한 그루에 4000원이나 하는 소나무 묘목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다. 월급을 타는 대로 목돈을 떼어서 묘목을 구입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제법 큰돈을 소나무에 쓰는 일을 두고 부부 싸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심었던 새순은 지금은 불혹(40세)을 맞은 높이 8m짜리 소나무로 자랐다. 면적 66만㎡의 동대산 일대에서 정씨의 소나무가 자라는 면적은 24%인 16만㎡나 된다.

 90년대 초 퇴직한 뒤에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하며 한 달 수입의 10%를 떼 소나무를 가꾸는 데 쓰고 있다. 한 지인은 “소나무에만 적어도 1억원은 넘게 썼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씨는 “돈 얘기는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40여 년 동안 고비도 몇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민들의 오해가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주민들은 “나무를 키워 몰래 팔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동대산은 공공 소유로 나무를 캐내 파는 건 불법이다. 그러나 소나무가 자라며 푸른 숲이 점차 만들어지자 주민들도 정씨의 진심을 이해하게 됐다. ‘소나무 아저씨’라는 별명도 생겼다.

 정씨는 요즘 아들 정재원(34)씨와 함께 산을 찾는 날이 더 많아졌다. 2010년 6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부터 소나무 가꾸기가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재원씨는 “아버지의 소나무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긍지를 느낀다”며 “아버지를 이어 계속 소나무를 가꿀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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